서울 역삼동 한 건물 앞에 리무진이 등장한다. 얼굴에 붕대를 감고 선글라스로 눈을 가린 한 여성이 건물 밖으로 나와 차에 올라탄다. 여성이 방금 빠져나온 건물에 들어가 보니 1층 상가 출입문에 국내 유명 B성형외과 이름만 적혀 있다. 이곳은 B성형외과의원이 운영하는 입원실이다. 병원에서 5분 거리도 채 안 된다. 이곳에 상주하며 환자를 돌보는 한 직원은 “이곳은 외국인뿐만 아니라 지방에서 오는 한국인 환자도 많다”고 말했다.

입원 필요한 안면 윤곽 수술자 늘어난 탓

이번에는 강남의 ‘뷰티 밸리’로 불리는 압구정·신사동 일대로 시선을 옮겨 본다. 대로변에 줄지은 성형외과의 양쪽 뒷골목인 신사동 569, 570 일대와 건너편 596, 597, 600 일대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성형 환자 무리가 원룸·오피스텔·다세대주택으로 들어간다.

이들은 왜 병원이 아닌 다른 곳에 입원할 수밖에 없을까. 지난해만 3만4156명의 외국인 환자가 찾았다는 강남구의 성형외과들의 불법 입원실 운영 현장이 포착됐다.

몇 년 새 ‘한류 성형’이 꾸준한 인기를 끌며 성형 부위도 바뀌었다. 예전에는 쌍꺼풀·성형이 인기였다면 이제는 안면 윤곽의 시대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실제 강남 성형외과를 찾은 외국인들은 주름 개선이나 안면 윤곽 수술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된다. 성형수술 중 유일하게 24시간 이상 입원이 필요한 수술이 안면 윤곽이다. 입원 기간은 수술 부위에 따라 1박 2일 또는 2박 3일, 길게는 3박 4일 정도다. 실제 안면 윤곽 수술을 원하는 환자는 몰려드는 데 입원실이 부족해 결국 불법 입원실 운영을 부추긴 셈이다. 여기서 말하는 ‘입원실’은 24시간 이상 체류할 수 있는 곳을 말한다. 수술 후 잠시 쉬었다 가는 회복실과는 다른 개념이다. 입원비는 1박 기준으로 3만~5만 원 정도 현금만 받는 곳이 있는가 하면 수술비에 포함된 곳도 있다.

불법 입원실은 내·외부 모두 있다. 앞서 말한 원룸·투룸·오피스텔·주택 등을 장기 임차해 병원 외부에 입원실을 운영하거나 의료 기관 내부에서 운영하는 입원실 두 가지 형태로 구분된다.

적법한 입원실은 이렇다. 우선 해당 구 보건소에 의료 기관과 같은 주소에 정확한 병상 개수를 접수해야 한다. 예를 들어 강남구 신사동 ○○ 소재의 A 병원이 가진 병상 수가 40개라면 의료 기관 현황에 이와 같은 내역이 명시돼 있어야 옳다. 만약 개원 당시에는 없었던 입원실을 신설하거나 기존 시설보다 늘린다면 보건소에 ‘의료기관개설신고’를 접수하고 허가를 받은 뒤 운영할 수 있다.

그런데 강남구 보건소가 내놓은 2013년 7월 31일 기준 강남구 의료 기관 현황 자료에 따르면 총 327개 성형외과 의원·병원이 등록한 입원실과 실제 운영 현황이 크게 다르다. 327개 중 입원실을 운영하는 의료 기관은 52개, 216개의 병상을 운영하고 있다고 집계되지만 이 중 반 이상이 사실과 다른 것으로 파악됐다.

김홍겸 강남구 보건소 의약과 주임은 “보건소에 등록돼 있는 의료 기관의 소재지 외에 다른 곳에서 입원실을 운영한다든가 의료 행위를 하는 것은 명백히 의약법에 위반 된다”며 “입원실을 늘리거나 새로 마련할 때는 반드시 의료기관개설신고를 접수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먼저 외부에 마련된 입원실을 살펴봤다. 대개 안면 윤곽으로 입소문난 10여 개의 성형외과들이 외부 입원실을 운영한다. J성형외과는 신사동 556 일대에 있는 한 주택을 통으로 임대해 사용하고 있다. 지하 1층~지상 2층으로 된 이 주택은 한 층당 83㎡(25평) 규모로 방이 각 세 개씩 있다. 1실에 환자 2~3명이 사용한다. 이곳은 간단하게 치료해 주는 간호사와 밥을 해주는 아주머니가 상주해 있다.

인근 부동산 관계자는 “성형외과에서 입원실 용도로 원룸·오피스텔·주택을 찾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 원룸 월세는 보통 60만~90만 원, 투룸은 이에 두 배 정도 시세고 단독주택은 월세 560만~600만 원이다. 보통 한 방에 환자 한두 명 정도 들어가게끔 운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병원으로서는 수익도 안 나는 입원실을 병원 내에 마련해 봐야 남는 게 없어 위험을 감수하고 외부 시설을 임차해 사용하고 있다. 압구정 대로변 건물 99㎡(30평형)대라면 관리비를 포함해 500만~650만 원이 깨진다. 그러니 누가 내부에 입원실을 넣겠느냐”고 말했다.

이 일대 입원실은 역삼동 B성형외과와 달리 이름조차 쓰여 있지 않아 어떤 건물에 어느 병원 입원실이 있다는 것을 알아채기조차 어렵다.

강남구 일대 집 주인들은 새로운 손님맞이에 신이 난 모양새다. 성형외과 입원실로 월세를 주면 시세보다 돈도 잘 나오고 시세보다 조금 높게 불러도 먹힌다(?)는 소문이 돌자 너도나도 성형외과 입원실 모시기에 한창이다.

신사동의 한 부동산 관계자는 “집주인끼리 금세 소문이 났는지 물건이 나오면 나부터 달라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1년이 기본 계약 기간이지만 월세를 더 높여 3개월, 6개월 단위로도 계약하겠다는 집주인들과 병원도 있다. 이 분위기는 역삼동·논현동 부근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비즈니스 포커스] '한류 성형'의 그림자…환자 안전 뒷전
실제 강남구 일대 20여 곳의 주택 건물에 ‘임대 문의’ 전화를 걸어 입원실과 관련해 문의했다. 20곳 중 단 한 곳도 빠짐없이 자연스럽게 입원실로 쓸 수 있는 방 가격과 규모 등을 알려줬고 최근 한 병원에서 자신의 원룸 건물 전체를 입원실로 계약하려는 문의가 왔었다는 곳도 있었다.

그렇다면 의원·병원 내에서는 왜 합법적 운영이 어려운 것일까. 한 병원 컨설팅 업체 관계자는 “성형외과가 임차해 들어가는 건물의 건물주가 입원실이 있으면 계약하지 않고 추후에도 생기는 것을 싫어해 부동산 계약서 특약 사항에 ‘입원실은 두지 않겠다’는 조건을 거는 게 일상적”이라고 설명했다. 만약 입원실이 생기면 24시간 상주하는 경비원을 둬야 하고 건축법상으로도 용도 변경을 하고 장애인 주차 시설 및 장애인 화장실을 구비해야 하는 등 여간 귀찮은 게 아니다”고 했다.

빌딩에선 ‘노’ 원룸에선 ‘웰컴’

또 다른 문제도 있다. 입원실 규격이 까다롭다는 점이다. 의료 기관의 시설 규격(의료법 제34조)에 따르면 입원실은 3층 이상 또는 건축법 제2조제1항제5호에 따른 지하층에는 설치할 수 없다. 다만 건축법 시행령 제56조에 따른 내화구조(耐火構造)라면 3층 이상에 설치할 수 있다. 정해진 입원실 면적도 준수해야 한다. 입원실의 면적은 환자 1명을 수용하는 곳은 6.3㎡ 이상이어야 하고(면적의 측정 방법은 건축법 시행령 제119조의 산정 방법에 따른다. 이하 같다) 환자 2명 이상을 수용하는 곳은 환자 1명에 대해 4.3㎡ 이상으로 해야 한다.

논현동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성형외과를 처음 개설할 때 대개 입원실이 없다고 얘기하는 게 일반적이다. 보건소에도 그렇고 건물주에게도 그렇다. 내부에 입원실을 두려고 해도 까다로운 규제에 발목을 잡히는 경우가 많아 보건소에 신고하지 않고 그냥 운영하는 곳이 많다”며 씁쓸해 했다.

청담동의 한 성형외과 원장은 “동료 성형외과 의사는 호텔을 알아보고 다니더라. 본인 또는 타인 이름으로 장기 임차해 입원실로 쓸 계획이라더라”고 말했다. 단, 요즘 성형외과에서 호텔이나 기타 숙박 시설을 연계해 대신 예약해 주는 것은 위법이 아닌 성형외과의 서비스의 일부에 속한다.

늘어나는 성형외과의 불법 입원실 운영은 곧 환자들의 안전 문제로 귀결되기도 한다. 한 병원 관계자는 “손에 꼽지만 위급한 상황이 발생한 적도 가끔 있었다. 그럴 땐 119를 불러 인근 응급실로 보내기도 했다”며 위험했던 상황을 설명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의료 관광을 목적으로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환자는 2009년 8만1789명에서 2012년에는 15만5673명으로 2배 가까이 증가했다. 그러나 실제 의료 기관 대부분은 해외 환자들을 맞이하기 위한 준비가 제대로 안 된 것이 사실이다. 현재 국내를 찾는 해외 환자들에게는 높은 성형 기술력과 안정성 등은 물론이고 수술 후 케어가 가능한 합법적인 시설이 절실하게 필요한 상태다.

최은혜 강남구 보건소 주임은 “문제가 있다면 해당 의료 기관을 조사할 것”이라며 “의료 관광 선진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으니지켜봐 달라”고 했다.

김보람 기자 boram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