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갑 풀고 도주 올해만 5번째…매뉴얼 '무용지물'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던 피의자가 감시가 소홀한 틈을 타 도주하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사기 혐의로 체포돼 경찰 조사를 받던 20대 남성이 수갑에서 손을 빼내고 경찰서를 빠져나갔는데도 담당 경찰관들은 15분 동안이나 도주 사실을 파악하지 못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14일 경기도 부천 원미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전 5시 34분께 이 경찰서 피의자 대기실에 있던 사기 혐의 피의자 이모(21)씨가 경찰서 밖으로 달아났다.

이씨는 당시 왼쪽 손목에 수갑을 찬 채 조사를 받기 위해 대기하던 중이었으며 나머지 수갑 한쪽은 대기실 철제 의자에 채워진 상태였다.

이 경찰서 1층 형사계 사무실 안쪽 구석에 있는 피의자 대기실에는 이씨 외 주취자 2명이 함께 있었다.

또 대기실 인근에는 당직 형사팀 소속 경찰관 4명이 근무 중이었다.

그러나 누구도 이씨가 달아나는 장면을 목격하지 못했다.

이 때문에 이씨는 형사계 사무실을 나와 1층 로비를 거쳐 경찰서 정문을 빠져나가는 동안 아무런 제지를 받지 않았다.

경찰은 이씨가 사라진 뒤 15분 동안이나 도주 사실을 알지 못했다.

이후 원미경찰서는 전직원을 비상소집해 이씨의 뒤를 쫓았지만 이미 자취를 감춘 뒤였다.

경찰의 한 관계자는 "경찰서 건물 로비에 직원이 배치돼 있지만 수갑을 차지 않은 상태여서 민원인과 구분이 안 돼 제지하지 못했다"면서도 "피의자를 놓친 것은 형사팀 직원들이 실수한 것"이라고 인정했다.

180㎝의 키에 70㎏인 이씨가 수갑에서 손을 빼내고 도주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당시 느슨하게 수갑을 채운 게 아니냐는 의혹도 나온다.

경찰은 지난해 12월 일산경찰서에서 성폭행 혐의로 조사를 받던 중 수갑에서 손을 빼내고 달아났던 '노영대 사건'이 발생하자 도주방지 매뉴얼을 만들었다.

손목 굵기에 따라 채워야 하는 수갑 톱날 수를 정해뒀다.

또 손목 굵기에 비해 손이 작은 피의자가 수갑을 쉽게 풀지 못하도록 톱날의 수를 조정하고 담당경찰관이 수시로 수갑 상태도 확인하도록 했다.

그러나 노영대 사건 이후에도 서울, 남원, 전주 등지에서 손을 수갑에서 빼내거나 아예 수갑을 풀고 달아나는 사건이 올해에만 5건이나 발생해 매뉴얼의 실효성이 낮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기지방경찰청은 이씨가 도주할 당시 형사 당직팀 경찰관들의 근무태도에 문제가 없었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경기경찰청의 한 관계자는 "당시 도주 상황에 대한 경찰관들의 과실 여부는 이후 감찰 부서에서 조사할 예정"이라며 "지금은 피의자를 잡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부천연합뉴스) 손현규 기자 so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