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교한 직구 제구로 하비의 광속구 제압

미국프로야구 내셔널리그의 동부지구와 서부지구를 대표하는 괴물 투수 대결에서 류현진(26·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이 맷 하비(24·뉴욕 메츠)를 제압하고 웃었다.

류현진은 14일(이하 한국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타디움에서 벌어진 메츠와의 홈경기에서 솔로홈런 1개를 내줬을 뿐 7이닝을 1점으로 막고 4-2 승리의 발판을 놨다.

이에 반해 올스타 휴식기 이후 4경기에서 2승 1패, 평균자책점 0.91이라는 빼어난 성적을 올리고 메츠의 기둥 노릇을 해온 하비는 다저스 타선의 집중타에 6이닝 동안 4점을 주고 무너져 시즌 4패(9승)째를 당했다.

다저스 타선이 리그 평균자책점 부문 2위를 달리던 하비의 방어율을 2.09에서 2.23으로 올려놓은 덕분에 이 부문 1위인 다저스 에이스 클레이튼 커쇼(1.88)도 반사 이익을 얻었다.

한국에서 98승을 올리고 메이저리그로 옮긴 류현진과 풀타임 첫해를 뛰는 하비의 결정적인 차이는 경기 운영능력이었다.

하비는 직구 평균 구속으로 시속 155㎞, 여느 투수의 직구에 맞먹는 148㎞짜리 슬라이더를 뿌리는 괴력의 투수다.

우완 정통파 파워 투수의 계보를 잇고 있으나 위기를 넘어가는 능력에서는 류현진에게 못 미쳤다.

류현진의 이날 직구 최고 구속은 시속 151㎞.
비록 구속은 뒤졌으나 직구의 정교함에서 하비를 압도했다.

류현진은 1회 1사 후 우타자 후안 라가레스에게 슬라이더를 던졌다가 좌측 펜스를 살짝 넘어가는 홈런을 맞자 곧바로 볼 배합을 바꿨다.

왼손 타자 몸쪽에 떨어지는 체인지업, 우타자 몸쪽에 낮게 깔리는 슬라이더로 최근 재미를 봤으나 슬라이더를 맞자 대신 직구로 밀어붙였다.

류현진은 시속 148㎞짜리 직구로 오른손 타자 몸쪽을 낮게 파고들어 괴롭혔다.

제프 켈로그 주심이 낮은 볼에 후한 판정을 주지 않았으나 류현진이 스트라이크와 다름없는 직구를 잇달아 포수 미트에 꽂자 가뜩이나 못 때리던 메츠 타선은 더욱 위축됐다.

주포 데이비드 라이트가 허벅지 근육통으로 이달 초 부상자명단에 오른 메츠는 전날까지 팀 타율 0.238로 리그 꼴찌 수준인 14위에 머무르고 있다.

1회 1사 1루에서 말론 버드를 3루수 병살타로 요리한 공도 낮게 스트라이크 존을 관통한 직구였고, 땅볼 10개를 유도한 공도 대부분 직구였다.

직구 제구가 마음대로 이뤄지자 류현진은 슬라이더, 커브를 아낀 대신 '전가의 보도' 체인지업만으로도 손쉽게 메츠 타선을 요리했다.

류현진과 달리 힘으로 다저스와 맞선 하비는 병살타 3차례를 유도하며 위기를 넘겼으나 5회 4번째 고비에서 주저앉았다.

1-0으로 앞선 5회 하비는 1사 1,3루에서 시속 156㎞짜리 직구를 닉 푼토에게 던졌다가 좌선상에 떨어지는 2루타를 맞고 2점을 줬다.

하비의 직구는 스트라이크 존 높게 형성됐고, 타순이 한 바퀴 돌자 얻어맞기 시작했다.

하비는 6회 커브와 슬라이더로 볼 패턴을 바꿨으나 마크 엘리스와 야시엘 푸이그에게 잇달아 안타를 맞았고 다시 A.J 엘리스에게 직구로 승부를 걸었다가 2타점 좌전 적시타를 내주고 무너졌다.

뒤지고 있어도 절대 지지 않을 것 같은 현재 다저스의 분위기에 힘을 얻은 류현진이 부담이 적은 상태에서 마운드에 오른 반면 온전히 자신의 힘으로 승리를 따내야 하는 하비의 처지에서는 어깨가 무거웠을 수도 있다.

두 투수의 심리 상태도 달랐지만 무엇보다 수많은 타자를 상대하며 경기 운영 능력을 키워 온 류현진의 배짱과 담력이 이날 하비보다 한 수 위에 있었음은 분명하다.

(서울연합뉴스) 장현구 기자 cany9900@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