꽁꽁 숨긴 비자금 1천억원대…연희동 별채 경매했더니 처남이 낙찰
재용씨 노숙인 계좌로 비자금 100억대 돈세탁 의혹


은닉재산을 둘러싼 검찰과 전두환 전 대통령의 기나긴 싸움은 1997년 4월17일 대법원이 전씨에게 무기징역과 함께 추징금 2천205억원을 확정하면서 시작됐다.

검찰은 전씨가 조성한 비자금이 7천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봤다.

전씨를 뇌물 혐의로 재판에 넘길 때만 해도 1천억원을 훌쩍 넘는 거액이 남아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돈의 흐름을 추적하는 데 실패하면서 16년 동안 전체 추징금의 4분의1도 거두지 못했다.

◇3년마다 시효만 겨우 연장 = 검찰은 현재까지 전씨에게서 모두 533억여원을 추징했다.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는 주장에 걸맞게 전씨가 자진해서 낸 돈은 거의 없다.

533억원 가운데 312억9천만원은 확정 판결이 난 1997년 추징됐다.

예금 107억원과 액면가 1억원짜리 무기명 산업금융채권 124장, 장기신용채권 12장 등이다.

300억원이 넘는 큰 돈을 단기간에 추징할 수 있었던 이유는 검찰이 수사과정에서 이미 압수한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1997년 이후 검찰은 3년마다 돌아오는 시효를 연장하는 데 그쳤다.

시효는 만료 전 1원이라도 추징하면 다시 3년 연장됐다.

검찰이 새로 찾아내 추징한 전씨의 재산은 없었다.

첫 번째 시효 만료를 앞둔 2000년 5월 검찰은 1987년식 벤츠 승용차와 장남 재국씨 명의로 된 용평리조트 콘도회원권을 강제집행했다.

당시 검찰은 "추징금 징수시효를 연장하기 위한 조치일 뿐"이라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경매에 넘겨진 콘도회원권은 1억1천264만원, 벤츠 승용차는 9천900만원에 낙찰됐다.

벤츠 승용차를 감정가 1천500만원보다 6배 이상 비싸게 주고 가져간 사람은 손삼수 전 비서관이었다.

그는 청와대에서 재무업무를 맡아 전씨의 비자금을 관리했다.

다시 3년이 지난 2003년 검찰은 법원에 전씨에 대한 재산명시를 신청했다.

돈을 숨겨두고 추징금을 내지 않는 전씨의 재산을 공개해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전 재산이 29만원이라는 주장은 이 재판 과정에서 나왔다.

검찰은 법원이 확인한 재산목록을 근거로 2003년 10월 진돗개 2마리와 TV·냉장고·피아노 등을 경매에 부쳐 1억7천950만원을 확보했다.

전씨는 진돗개 등 일부 경매 물품을 돌려준 낙찰자들에게 손수 쓴 붓글씨를 선물했다.

11월에는 연희동 자택 별채를 경매에 넘겨 16억4천800만원을 추징했다.

낙찰자는 전씨 일가의 '금고지기'로 알려진 처남 이창석씨였다.

전씨의 부인 이순자씨는 2004년 자신이 관리하던 130억원과 친인척에게 모은 70억원 등 200억원을 내놓는다.

검찰이 자신과 아들 재용씨 등에게 전씨 비자금이 흘러들어간 정황을 잡고 수사하자 추징금을 '대납'한 것이다.

그러나 이씨는 "결혼 후 10년간 불린 알토란같은 내 돈"이라며 비자금 연관성을 부인했다.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기소된 재용씨는 같은 해 10월 항소심에서 징역 2년6월에 집행유예 3년, 벌금 60억원을 선고받고 풀려났다.

같은해 전씨가 서초동 일대 토지는 장인과 공동 명의로 소유하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자 검찰은 전씨 지분을 압류했다.

이 토지는 2006년 경매에서 1억1천939만원에 낙찰됐다.

낙찰된 돈은 세무당국이 조세채권으로 압류해 추징금으로 환수하지는 못했다.

이후 검찰은 2008년 은행 채권 추심으로 4만7천원을 추징해 시효를 다시 3년 늘리는 '성과'를 거뒀다.

2010년 10월에는 전씨가 "강연으로 소득이 발생했다"며 300만원을 납부했다.

자진해서 추징금을 낸 것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러나 시한 만료를 8개월 앞두고 미납 추징금 1천672억원의 극히 일부만 납부해 '강제 집행을 피하려는 꼼수'라는 비난만 받았다.

◇'꽁꽁' 숨긴 1천400억원 = 전씨 내외는 1988년 11월23일 오전 연희동 자택에서 전 재산을 국가에 헌납하겠다고 밝히고 백담사로 떠났다.

전씨가 공개한 재산은 '쓰다 남은' 정치자금 139억원을 포함한 현금·금융자산 162억원과 부동산 4건 등이었다.

거짓말은 8년 뒤 들통났다.

검찰은 전씨의 비자금 사건 두 번째 공판이 열린 1996년 4월15일 "전씨가 퇴임시 1천404억원의 유가증권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발표했다.

이 돈이 1992년께는 2천129억원으로 불어났다.

이후 측근과 친인척 관리 등에 353억원을 사용해 당시 재산은 1천776억원으로 집계했다.

검찰은 이 가운데 300억여원을 압수했다.

전씨도 같은날 공판에서 8년 전 회견에 대해 "정치상황에 따라 허위로 발표한 것"이라고 말했다.

퇴임 이후 '5공 세력 규합'을 위해 수백억원을 쓴 사실도 인정했다.

검찰은 당시 전씨가 1992년 이후 900억원 상당의 채권을 재매입한 사실을 확인했다.

그러나 검찰은 비자금 은닉처를 정확히 파악하지는 못했다.

무기명 채권과 현금, 수백 개의 차명계좌를 통해 세탁됐기 때문이다.

전씨의 '돈세탁 실무진'은 12·12와 5·18 사건 특별수사본부가 꾸려진 1995년 11월30일까지도 여러 계좌를 거쳐 돈세탁을 계속했다.

숨겨진 비자금의 단면은 우연한 기회에 드러났다.

검찰은 2003년 불법 대선자금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전씨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괴자금' 167억원을 아들 재용씨의 차명계좌에서 발견했다.

수사 과정에서 재용씨가 노숙인 명의로 증권계좌를 개설해 비자금을 세탁한 사실이 드러났다.

재용씨는 노숙인 계좌를 통해 137억원어치의 국민주택채권을 수표로 바꾼 뒤 차명계좌 7개에 나눠 입금했다.

일부는 타인 명의로 구입한 빌라 분양대금을 내는 데도 썼다.

검찰이 채권의 매입·유통 과정을 추적한 결과 김종상 전 청와대 경리과장 명의의 계좌 등 과거 전씨 비자금 수사에서 확보한 계좌가 다수 나왔다.

국가정보원이 '우주홍보사'나 '태양문화협회' 등의 차명으로 비자금을 관리한 비밀계좌도 연결됐다.

당시 수사기록과 판결문에는 전씨의 친인척 수십 명이 언급된다.

5공화국의 비자금 관리책으로 '오공녀', '공아줌마'로 불린 처남 이창석씨의 부인 홍정녀씨, 전 청와대 경호실 경리과장 김종상씨 등 전씨의 비자금을 모금·관리한 핵심 인물들도 다시 등장했다.

법원은 "액면가 합계 73억5천500만원 상당의 자금원이 아버지가 관리하던 계좌에서 유래됐다"며 은닉된 비자금을 인정했다.

검찰은 1995년 수사 이후 비자금의 실체에 가장 근접했다.

그러나 이 돈을 전씨 소유로 되돌리는 소송을 내지 않아 추징에는 끝내 실패했다.

(서울연합뉴스) 김계연 기자 dad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