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장 "자동 속도조절 작동 안해"…조종과실·기체결함 규명 단서
한·미, 블랙박스 합동조사 시작…과잉 정보공개 논란


미국 샌프란시스코 공항에서 발생한 아시아나기 착륙사고에 대한 원인 조사가 자동속도설정 기능(오토 스로틀)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작동하지 않았다면 원인이 무엇인지에 집중되고 있다.

사고 당시 조종을 맡은 기장과 교관 기장이 미국 당국에 자동 속도설정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고 진술함에 따라 사고 비행기가 착륙 직전 지나치게 낮은 고도와 느린 속도로 활주로에 진입한 원인이 조종사 실수 외에도 기계 결함에 있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

사고 발생 나흘째인 9일(현지시간) 현장 조사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으며 국토교통부 조사관도 미국 워싱턴에 도착해 블랙박스 조사에 합류하는 등 사고 원인 규명 작업에 속도가 붙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세계 최대 조종사 노조단체인 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는 미국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가 조사 진행상황을 과잉 공개한다고 지적하는 등 조사 과정에 대한 논란도 불거졌다.

◇ 기장 "자동속도설정 작동 안했다"
데버라 허스먼 NTSB 위원장은 이날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사고 조사 브리핑에서 두 기장이 착륙 준비를 하면서 권장 속도인 137노트(시속 254㎞)로 날도록 자동 속도 장치를 설정했지만 듣지 않았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자동 속도 설정 장치는 조종사가 원하는 속도를 입력하면 비행기가 스스로 속도를 유지하도록 작동한다.

조종사들은 착륙 때 비행기가 권장 속도인 137노트로 날도록 이 장치를 설정했으나 사고기는 이보다 느린 103노트로 활주로에 진입했다.

4천피트 상공에서 착륙 준비에 들어간 조종사는 비행기 속도가 설정보다 느리고 고도도 낮다는 사실을 500피트 상공에서 인지하고 급히 속도를 높여 기수를 올리려 했으나 사고를 피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조종사들의 이런 진술에 대해 NTSB는 비행 기록 점검 등 확인작업을 벌이고 있다고 말했다.

NTSB는 또 사고 당시 조종간을 잡은 이강국 기장이 사고기 기종 조종에 필요한 훈련 60시간 43시간을 마친 상태였으며, 교관 비행을 한 이정민 기장은 교관 기장으로는 처음으로 샌프란시스코 공항에 왔다고 밝혔다.

두 기장이 함께 비행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NTSB는 조종사들에 대한 음주, 약물 복용 조사에서는 아무 문제점을 발견하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NTSB는 이밖에 동체와 활주로 주변 등에 대한 조사를 벌인 결과 사고기의 착륙용 바퀴가 먼저 방파제에 부딪힌 뒤 동체 꼬리 부분이 충돌한 사실을 밝혀냈다.

◇ 블랙박스 합동조사 시작…현장조사 마무리단계
사고 현장 조사는 마무리 단계에 들어갔다.

샌프란시스코 공항 관계자는 이날 "아시아나항공이 오늘부터 NTSB의 허가를 받아 기체에서 수화물을 빼내 정리작업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아시아나 관계자도 이를 확인하고 "기체 하단부에 들어 있는 수화물 분리작업이 끝나면 NTSB 측의 최종 허가를 받아 현재 활주로에 그대로 보전되고 있는 기체를 처리하는 작업도 조만간 이뤄지게 될 것"이라며 "이르면 이번 주 안에도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한미 당국의 사고기 블랙박스 합동조사도 시작됐다.

국토교통부는 한국 조사관 2명이 미국 워싱턴에 도착해 블랙박스 조사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항공·철도 사고조사위원회 조사관과 아시아나항공 B777 기장 등 2명은 NTSB의 비행자료 기록장치(FDR)와 조종실 음성 녹음장치(CVR) 조사에 합류했다.

샌프란시스코 현지 합동조사반은 한국조종사협회 측 변호사 입회하에 조종사 2명을 조사한 데 이어 이날 현재 나머지 2명의 조종사를 조사하고 있다.

관제 시스템에 문제가 있었을 가능성도 확인하기 위해 공항 관제사가 고도와 각도 등의 정보를 적정하게 제공했는지 등도 조사하고 하고 있다고 국토부는 설명했다.

사고기 탑승객 중 샌프란시스코 현지에서 입원 중인 부상자는 25명이라고 국토부는 집계했다.

이 가운데 한국인 탑승자와 객실 승무원은 각각 4명이다.

◇ 조사당국 '과잉 정보공개' 도마…항공조종사협회 항의 성명
워싱턴DC에 본부를 둔 조종사 노조단체인 민간항공조종사협회(ALPA)는 성명을 내고 NTSB가 사고기 조종석 대화 등을 공개한 것은 시기상조이고 부적절하다고 지적했다.

협회는 성명에서 "이번 사고 직후 NTSB가 부분적인 데이터를 잘못된 방식으로 공개했다"면서 "이런 불완전하고, 맥락에서 벗어나는 정보는 사고 원인에 대한 수많은 억측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말했다.

협회는 또 "NTSB가 이렇게 빨리 기내 녹음장치의 세부 데이터를 공개한 것은 당혹스럽다"면서 현장 사고조사가 진행되는 중에 이렇게 많은 정보가 공개되는 것은 전례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허스먼 NTSB 위원장은 CNN방송과의 인터뷰에서 "NTSB 조사 활동의 특징 중 하나는 투명성이다.

우리가 공개한 정보는 사실에 입각한 것으로, 조사 과정에서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허스먼 위원장은 그러나 이날 브리핑에서 정보 공개에 대한 비난을 고려한 듯 "사고 원인에 대한 성급한 결론은 내지 말자"면서 "확인된 사실만 알리겠다"고 말하기도 했다.

최정호 국토부 항공정책실장은 NTSB의 정보 과잉공개 논란과 관련해 "조사당국으로서는 대형사고이고 언론매체의 관심이 많으니 사실에 입각에 사고 관련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했다.

그는 또 NTSB에 사고조사 브리핑 전에 자료를 우리 조사단에 제공해 양국이 동시에 브리핑하자고 제안해 미국 측이 이를 검토하고 있다면서 "우리 국적기 사고여서 국민적 관심이 높은 만큼 알권리를 보장하는 차원에서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샌프란시스코·서울·세종연합뉴스) 권훈 임상수 특파원 권수현 김윤구 기자 inishmore@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