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칼럼] 할랄(halal)
이슬람 금식 성월(聖月)인 라마단이 어제 시작됐다. 이슬람교도인 무슬림은 약 한 달간 일출부터 일몰 때까지 금식한다. 음식은 해가 진 뒤에 먹는다. 재미있는 것은 이 기간 전후에 식품 소비량이 가장 많다는 점이다. 낮 동안 굶은 탓에 평소보다 더 많은 식료품을 사기 때문이다.

그러나 뭐든지 먹는 건 아니다. 율법에 규정된 것만 먹을 수 있다. 이를 통틀어 할랄(halal)이라고 하는데, 아랍어로 ‘허용된 것’이라는 뜻이다. 식품뿐만 아니라 인간 행동과 규범, 소비까지 포함하는 말이다. 반대로 먹을 수 없는 것은 하람(‘금지된 것’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대표적인 금지식품은 돼지고기와 돼지로 만든 모든 음식, 동물의 피와 그것으로 만든 식품, 개와 고양이 같은 애완동물, 당나귀, 노새, 말 등이다. 알코올성 음료와 죽은 동물 고기, 육식 야생 동물도 먹을 수 없다. 메뚜기를 제외한 곤충 역시 먹지 못한다. 허용된 고기라도 도축할 땐 엄격한 규율을 따라야 한다. 짐승의 머리를 메카 쪽으로 놓고 알라에게 기도한 후 고통을 없애기 위해 단칼에 멱을 따고 피를 모두 빼낸다. 해산물에 관해서는 이견이 있으나 비늘이 있는 물고기는 거의 다 먹을 수 있다.

무슬림이 세계 인구의 약 25%인 16억명에 이르는 만큼 할랄식품 시장 규모도 엄청나다. KOTRA는 6500억달러(약 750조원)로 추산한다. 네슬레와 KFC 등 다국적 기업들이 일찍부터 눈독을 들인 것도 이 때문이다. 무슬림 시장을 뚫으려면 금지식품을 넣지 않았다는 할랄인증을 받아야 한다. 다행히 농심, 크라운제과 등 국내 업체들의 할랄 수출이 늘고 있다고 한다.

농심의 ‘할랄인증 신라면’은 상반기에만 100만달러 이상 팔렸고 연말까지는 200만달러를 넘을 모양이다. CJ제일제당은 햇반 등 43개 품목으로 올해 100억원의 매출을 올릴 계획이다. 크라운제과의 죠리퐁 등 과자와 남양유업의 멸균초코우유, 파리바게뜨의 빵까지 인기를 끈다니 더욱 반갑다.

할랄시장의 영역은 식품 외에도 의약품, 화장품 등으로 급속히 넓어지는 추세다. 오일머니를 쌓은 두바이 여성들은 동물 성분을 배제한 화장품 구입에만 월 334달러(약 38만원)를 쓴다고 한다. 세계 최고 수준이다. 말레이시아는 이슬람권에 할랄제품을 수출해 연 11억5700만달러(약 1조3000억원)를 벌어들일 정도다. 영국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무슬림의 구매력이 커지면서 할랄시장이 연 20%씩 성장 중”이라고 보도했다. 앞으로는 할랄과 하람의 경계도 모호해질 것이다. 우리 기업들이 더 넓고 긴 안목으로, 그러나 발빠르게 움직여야 할 이유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