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학대신 창업 택한 농부의 아들…고비때마다 M&A로 사세 확장…클럽메드도 삼킨 '중국의 워런 버핏'
1992년 중국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관직 대신 창업을 선택하는 ‘상하이(上海)’가 한창 유행이었다. 당시 중국 최고지도자였던 덩샤오핑이 화난(양쯔강 이남)지역을 순방(南巡講話)하며 개혁·개방 의지를 천명한 뒤 지식인들의 창업 열풍이 불면서다. 중국 명문인 상하이푸단대 철학과를 갓 졸업한 한 청년은 3만8000위안을 손에 쥐고 고민에 빠졌다. ‘이 돈으로 남들처럼 유학길에 오를까, 아니면 이 땅에서 한번 모험을 해볼까.’

오랜 고민 끝에 후자를 택한 그는 같은 대학에서 유전공학, 컴퓨터공학을 전공한 친구 네 명과 시장 조사 및 컨설팅 기업 ‘광신테크놀로지컨설팅’을 창업했다. 10개월 뒤, 10만위안으로 시작한 이 회사는 100만위안의 수익을 올렸다. 이 회사는 지난해 매출 568억위안(약 10조5000억원), 중국 상하이시 100대 민영기업에서 부동의 1위를 지키는 창업 성공신화가 됐다. 2007년 이 청년은 포브스가 선정한 중국 부호 순위에서 재산 48억5000만달러(약 5조6000억원)로 3위에 올랐다. ‘중국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는 궈광창 푸싱그룹 회장(46)의 이야기다.

○농부의 아들이 창업 신화로

궈 회장은 저장성 외곽에서 소작농의 아들로 나고 자랐다. 우수한 성적으로 상하이푸단대에 입학한 그는 개혁·개방의 물결을 지켜보며 성장했다. 궈 회장은 “개혁·개방 이후 중국에는 네 번의 기회가 있었다”고 말한다. 개혁 초기 수많은 자영업자가 출현했을 때, 1992년 지식인의 창업열풍이 불 때, 자본시장 제도가 바뀌면서 민영기업이 활성화될 때, 국영기업이 분리돼 나올 때 등이다. 그는 푸싱그룹이 성공한 이유로 “기회를 잘 잡아 변화를 시도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1992년 창업 열풍이 불 때 유학을 떠나지 않은 대신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철학을 전공한 그는 푸단대 공학도였던 졸업동기생을 끌어모아 ‘창업 5인방’을 꾸렸다. 궈광창을 중심으로 량신쥔, 왕췬빈, 판웨이, 탄젠 등이다. 푸싱그룹의 전신인 컨설팅회사 ‘광신테크놀로지컨설팅’을 통해 100만위안의 종잣돈을 모은 이들은 컨설팅업계에 경쟁자들이 많아지자 부동산업으로 눈을 돌렸다. 아파트 매매 중개업에 정보기술(IT)을 접목시켜 1000만위안을 손에 넣었다. 하지만 부동산 투자 역시 곧 경쟁자가 늘었다.

궈 회장은 이때를 회상하며 “고위험·고수익 업종을 찾고 있었다”고 말한다. 생물의학 분야로 전격 진출하게 된 배경이다. 궈 회장은 1993년 모교인 상하이푸단대 생명대학원에 새로운 제안을 했다. 푸싱그룹이 DNA진단 검사설비와 기술인력을 제공하고, 푸단의대가 장소를 제공하는 협력 방식으로 DNA를 활용한 새로운 개념의 간염진단시약인 PCR B형간염 시약을 상품화하는 것이었다. 생물의약품 사업 분야로의 첫걸음이자, 중국 내에서도 새로운 시도였다. 이 사업으로 궈 회장을 포함한 5인방은 1억위안을 벌어들였다. 이 시약의 성공을 발판 삼아 1994년 푸싱그룹으로 도약, 1998년 3억5000만위안의 자금을 모으며 상장기업이 됐다. 2007년 홍콩 주식시장에 성공적으로 상장, 시가총액 800억위안의 중국 최대 민영기업으로 성장했다.

○별명은 ‘대륙의 워런 버핏’


궈 회장은 소문난 승부사로 통한다. 강력한 발언, 결단력 있는 행동으로 늘 주목받는 젊은 최고경영자(CEO)다. 하지만 그 결정을 내리기까지 작은 부분도 수없이 많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라고 측근들은 입을 모은다. ‘대륙의 워런 버핏’으로 불리기도 한다. 스스로도 “푸싱그룹을 중국의 벅셔 해서웨이(버핏이 이끄는 회사)로 성장시키고 싶다”고 말한다. 작은 컨설팅업체로 시작했지만 현재 의약, 부동산 개발, 철강, 광업, 소매, 서비스업과 전략적 투자 사업까지 벌이고 있다. 얼마 전에는 세계적인 명품 리조트 체인인 클럽메드를 인수해 주목받았다.

궈 회장이 사업을 확장하는 방식은 ‘살 수 있는 것은 빌리지 않고, 빌릴 수 있는 것은 만들지 않는다’다. 현재 푸싱은 산하에 20여개 제약회사를 보유하고 있는데, 이 중 처음부터 투자해서 설립한 곳은 한 곳뿐이다. 인수합병(M&A)을 통해 사세(社勢)를 확장하면서 의료·제약 부문에 주력하던 푸싱은 외형 성장에 한계를 느낄 때마다 다른 업종으로의 투자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그중 하나가 철강업이다. 푸싱그룹은 2002년에 탕산젠룽유한공사 주식 30%를 매입했고, 2003년에 난징강철 및 닝보젠룽의 지분 인수를 동시에 진행했다. 또 부동산, 도소매, 금융업 등에 진출하는 등 다각화를 할 때마다 성공하면서 궈 회장의 다음 행보는 항상 업계의 관심사가 됐다.

그가 현재 눈독을 들이고 있는 건 서비스업이다. 그는 최근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중국 부자들의 관심사는 미용, 은퇴 준비, 그리고 명품”이라고 진단했다. 중국이 세계의 공장 역할을 하던 때는 이미 지났고, 앞으로 자산관리업·서비스업·유통업 등이 뜰 것이라는 예측이다. 몇 년 안에 중국이 세계 2위의 여가 여행 시장으로 급부상할 것에 대비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명품에서 찾은 것이다. 2010년부터 클럽메드 지분을 인수하고, 그리스 보석업체 폴리폴리를 인수하는 등 여행과 여가·명품 시장에 공을 들이고 있다.

○“M&A는 결혼과 비슷해”

궈 회장의 창업 5인방은 아직도 끈끈한 우정을 과시한다. 궈 회장과 량신쥔은 푸싱그룹의 공동 대표이사로, 왕췬빈과 판웨이, 탄젠은 각각 푸싱의약과 푸싱부동산, 푸싱정보기술 부문의 최고책임자로 일한다. 푸싱그룹이 소유하거나 연관된 기업만 100여곳에 이른다. 한 명도 이탈하지 않고 초창기 창업 멤버가 모두 함께할 수 있는 비결은 ‘믿음’ 이라고 궈 회장은 강조한다.

그는 “M&A에 있어서도, 경영에 있어서도 가장 중요한 건 믿음”이라고 말한다. 또 “M&A는 마치 결혼과 같아서 처음엔 많은 문제들을 돈으로 해결할 수 있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패하지 않으려면 서로 강한 신뢰가 바탕을 이뤄야 한다”고 말한다.

푸싱그룹은 전 세계를 누비고 있다. 이종(異種)결합도 두려워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의 경제위기를 기회로 보고 성장이 둔화된 기업을 적극적으로 찾아나서고 있다. 궈 회장은 회사를 통째로 인수하기보다 중국 시장에 관심이 있는 기업을 공략해 소수 지분만 인수하는 투자전략을 펼치고 있다.

궈 회장은 M&A를 통한 투자를 대폭 강화하기 위해 2011년 존 스노 전 미국 재무장관을 이사회에 영입하기도 했다. 지난해에는 미국 푸르덴셜파이낸셜과 연계해 6억달러 규모의 사모펀드를 조성하는 한편, 칼라일그룹과 1억달러의 위안화 펀드 조성 계약도 맺었다. 초기 사업인 제약 분야에서도 꾸준한 수익을 내고 있다. 세계적인 제약업체 시노팜의 지분 49%도 보유하고 있다.

‘창업의 기적’을 이뤄 세계 무대에서 뛰고 있는 궈 회장은 여전히 중국 시장을 가장 긍정적인 시장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는 “중국은 지금 고임금·고령화·금리자유화의 3대 변화 물결 속에 있다”며 “이 변화에 맞춰 최고 수준의 여가와 명품을 중국 내에서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푸싱그룹의 목표”라고 말했다.

김보라 기자 destinyb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