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정육점 사장님 베트남 간 이유
1960년대 말 광장시장에서 양복지를 팔던 점포는 300곳이 넘었다. 1980년대부터 기성양복이 빠르게 확산되자 원단 도매상과 양복점들이 줄줄이 문을 닫았다. 그러나 동양직물의 김기준 대표는 위기를 기회로 삼았다. 양복지 노하우를 살려 비싼 한복지 원단을 대체할 값싼 퓨전 한복지를 개발했다.

또한 구김이 적고 세탁하기 쉬운 승복지를 개발해 스님들을 공략했다. 이후 고학력자가 많이 배출되는 흐름을 감안, 학사복 박사복 등 졸업가운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수요의 변화에 따라 시장 저변을 넓혀 위기를 극복한 것이다.

《나는 골목의 CEO다》에는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고 절실함과 성실함으로 성공한 12명의 전통시장 강소상인들의 사례가 담겨 있다. 이들은 시장에 가면 흔히 만날 수 있는 신발가게, 식육점, 생선가게 등을 운영한다.

하지만 이들의 사업방식은 남다르다. 오경란 유성식육점 대표는 베트남·중국 등 외국인 근로자 고객이 늘어나자 외국 현지 시장을 직접 찾아 그들이 좋아하는 고기를 조사했다. 늦은 나이에도 외국어를 배워 그들에게 고기 요리법을 알려줬다.

하창수 하서방광천토굴새우젓 대표는 새우젓과 토굴을 관광상품으로 연계해 비수기에도 손님들을 끌었다. 새우젓의 염도와 맛을 연령에 따라 세분화해 중장년층부터 젊은층까지 공략했다.

이 밖에 대형마트에서 취급하지 않는 다양한 신발을 구비한 신발가게, 컴맹이지만 과감하게 인터넷 쇼핑몰을 열어 매출의 70%를 온라인으로 올리는 홍어 전문점 대표, 친환경 수제 젓가락으로 ‘명품 젓가락’에 도전하는 상점의 사례도 전통시장이 나아갈 방향에 대한 시사점을 준다.

20여만개 점포, 35만명이 넘는 상인들의 생업 터전인 전통시장에서 차별화에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이들의 성공 비결을 한자성어로 표현하면 온고지신(溫故知新)이다.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전통적인 방식을 지켰지만 거기에서만 머무르지 않았다. 이들은 치열한 배움을 통해 시대의 흐름에 따라갈 수 있는 변화를 끊임없이 시도한 것이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