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과 채권 시장 변동성이 커지면서 자산가들이 급격히 현금이나 현금성 자산의 비중을 늘리고 있다. 단기 자금을 운용하는 데 종합자산관리계좌(CMA), 머니마켓펀드(MMF) 등 투자형 상품 대신 만기 6개월 이내의 은행 예금을 선택하는 자산가들도 늘었다.

자산가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일선 프라이빗뱅커(PB)들은 시장에서 뚜렷한 방향성이 보일 때까지 이런 흐름이 몇 달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버냉키 쇼크' 이후…한국의 슈퍼리치는…"당분간 투자 잠수"…현금비중 20% 늘려

○CMA·MMF에서도 돈 떠나

지난달 19일 벤 버냉키 미국 중앙은행(Fed) 의장이 양적 완화 축소 일정을 밝힌 뒤 시장이 요동치면서 뭉칫돈의 현금 흐름도 종잡을 수 없다는 게 PB들의 얘기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달 27일 기준 은행의 실세총예금 잔액은 965조416억원으로 전월 말 대비 12조644억원 늘었다. 올 들어 가장 큰 증가폭이다.

같은 기간 자산운용사의 MMF 설정액은 2조1768억원, 증권사와 종금사의 CMA 설정액은 2조1733억원 각각 감소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 6월 개인투자자들의 장외 채권 거래규모는 4835억원으로 5월 7454억원보다 35.1% 줄었다. 순매수 대금은 5월 1855억원에서 6월 993억원으로 거의 반토막이 났다.

국내 주식형 펀드 수탁액이 지난달 18일부터 이달 1일까지 2조4673억원 늘어나긴 했지만 기관이 주로 투자하는 인덱스펀드에 들어온 자금이 해당 기간 유입액의 82%를 차지하고 있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게 된 원인은 투자자들이 자산 내에서 현금 비중을 빠르게 늘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재경 삼성증권 SNI강남사업부장(상무)은 “예전 같다면 증시가 폭락해도 한 달 정도 뒤엔 반등하곤 했는데 이번에는 복원력에 대한 기대가 없다시피 하다”며 “현금 비중을 높이는 방향으로 슈퍼리치들이 자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하고 있다”고 기류를 전했다. 이 상무는 “상당수는 현금성 자산의 비중을 전체 자산의 10~20% 정도 늘렸다”며 “현금 비율이 30%에 달하는 자산가들도 있다”고 덧붙였다.

○9월 이후 투자 이뤄질 듯

김재홍 한국투자증권 여의도 PB센터장은 “주식 채권 할 것 없이 자산시장 전체가 급락하면서 만기가 돌아온 자금을 재투자하지 않고 현금으로 쌓아두는 이들이 대부분”이라며 “전반적인 투자성향이 보수적으로 바뀌었다”고 말했다.

‘몸사리기’는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PB들은 보고 있다. 김진곤 우리투자증권 프리미어블루 강북센터 이사는 “미국과 중국 경제 상황이 어떻게 될지 명확해져야 투자가 이뤄질 것”이라며 “불확실성이 계속된다면 당분간 현금성 자산의 비중이 높게 유지될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이재경 상무는 “양적완화 축소에 관한 Fed의 입장이 더 명확해지고 유럽 관련 리스크가 해소되는 9월 이후에야 자금이 움직이기 시작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조귀동 기자 claymor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