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대선 앞두고 공보단장에 이어 두 번째 '등판'
새정부 초기 '불통ㆍ능력부재' 비판받은 靑홍보라인 총괄

'박근혜의 입', '박근혜의 복심'으로 불리는 이정현 청와대 정무수석이 공석인 홍보수석으로 3일 수평이동했다.

`박심(朴心)'을 정확히 읽어내는 최측근 중 한 명으로 꼽힌다.

지난달 초 박근혜 대통령의 방미 기간 발생한 윤창중 전 청와대 대변인의 성추행 의혹 사건에 책임을 지고 물러난 이남기 전 홍보수석의 바통을 이어받아 새 정부의 두 번째 홍보책임자가 됐다.

지난해 대선 당시 박 대통령이 의욕적으로 임명한 김병호 대선캠프 공보단장의 활동이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오자, 선거를 3개월 앞두고 전격적으로 공보단장으로 임명돼 대야 공격수로 활약을 펼친데 이은 두 번째 '구원 등판'이다.

이 수석의 홍보라인 투입은 박 대통령으로서 불가피한 선택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가 '불통' 이미지를 얻게된 데에는 박 대통령의 '마이웨이 국정운영'이 가장 큰 원인으로 거론됐지만, 이남기 홍보수석-윤창중 대변인으로 이어지는 홍보라인의 '역할 부재'도 그에 못지 않았다는 평가가 많았기 때문이다.

특히 이례적으로 기자 출신이 아니라 방송사 PD 출신으로 홍보 책임자에 발탁된 이남기 전 수석은 언론과의 접촉 자체가 부족했던데다 정무적 판단이 미흡했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휘라인 아래에 있는 대변인들에 대한 장악력도 부족했다는 얘기도 많았다.

이런 점에서 이정현 수석이 후임으로 가장 적합하다는 관측이 일찌감치 대두됐다.

박 대통령이 한나라당(새누리당 전신) 대표 시절이던 2004년 이후 당 부대변인으로 활동할 때 여당에 대한 공격을 주도하며 깊은 인상을 남겼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시절에는 캠프 공보단에서 활동하면서 박 대통령의 정책을 언론과 국민에 알리는 최일선에 섰다.

이 수석이 언론과의 접촉이 가장 활발했던 때에는 박 대통령이 '무관의 제왕'으로 불리던 시절이었다.

박 대통령이 당의 비주류로서 정치적 칩거를 했던 2008년∼2010년 전례가 없는 '대변인격'(格)이라는 직함 아닌 직함을 갖고 대변인 역할을 했다.

박 후보의 의중과 행보 대부분이 그를 통해 외부에 알려지면서 '박근혜의 입'이라는 별칭도 얻었다.

당시 혼자서 전 언론을 혼자 상대하다 보니 휴대전화 배터리를 12개 준비해놓고 사용했다는 일화는 두고두고 회자되고 있다.

전남 곡성 출신인 그는 올해로 29년째 정치활동을 하고 있다.

박 후보와의 인연은 2004년 17대 총선 때부터였다.

광주에서 후보로 출마한 그에게 당시 당대표이던 박 후보가 전화를 걸어 "어려운 곳에서 얼마나 고생이 많으세요"라고 격려했고 총선 후 오찬을 마련했다.

그가 이 자리에서 "한나라당의 호남 포기 전략을 포기해달라"고 열변을 토하자, 박 후보는 "어쩌면 그렇게 말씀을 잘하세요"라며 며칠 뒤 그를 당 수석부대변인으로 발탁했다.

박 후보가 2007년 당 대선후보 경선에서 패배한 뒤 당시 이명박 후보측으로부터 선대위 고위직을, 김문수 경기지사측으로부터 경기도 정무부지사직을 제의받기도 했으나 모두 고사했다.

그는 `지역구도 타파'를 내걸고 지난해 4ㆍ11총선에서 광주 서구을에 출마했으나 1995년 광주 시의원 출마, 17대 총선 출마에 이어 세번째로 고배를 마셨다.

18대 국회에서 비례대표 의원으로 활동하는 4년간 예결위원으로 호남 예산을 챙겼고, 주말마다 광주에 내려가 지역구를 다졌지만 견고한 지역구도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부인 김민경 씨와 1남1녀.
▲전남 곡성(55)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18대 국회의원 ▲한나라당 수석부대변인 ▲국회 예결ㆍ문방ㆍ법사위원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겸임교수 ▲새누리당 최고위원 ▲청와대 정무수석


(서울연합뉴스) 김남권 기자 quintet@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