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31일 발표한 공약가계부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재정지원 실천계획을 뜻한다.

박 대통령 재임 5년간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조달 방안을 꼼꼼히 세우고 구체적으로 어떻게 실천할지를 명시한 청사진인 셈이다.

가계부라는 단어를 쓴 것은 가계와 같이 정부도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고 반드시 필요한 분야에 돈을 쓰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경제여건에 따라서는 이런 재원조달 방안과 지출 계획이 지켜지지 않을 가능성도 있다는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 재정수반 104개 국정과제 재정지원 계획 담아
공약 이행을 위해서 구체적인 재정지원 실천계획을 세운 것은 역대 정권 중 이번이 처음이다.

이전에는 예산편성 과정에서 다른 사업에 밀려 재정 뒷받침을 받지 못한 공약들이 공약(空約)으로 그치는 경우가 많았다.

공약가계부는 국정과제에 대한 실천 의지를 갖고 수입과 지출 계획을 별도로 세웠다는 점에서 이전 정부의 공약 실천계획과 차별화된다.

공약가계부의 내용 구성을 보면 국정과제의 실천계획과 총소요금액, 이를 위한 재원조달 계획으로 나뉘어 있다.

우선 공약가계부에는 140개 국정과제 가운데 재원소요를 수반하는 104개 과제에 대한 재정지원 계획이 담겼다.

아직 세부 실천계획이 수립되지 않은 대선 지방공약은 공약가계부에 포함되지 않았다.

실천계획별 소요금액을 보면 정부는 4대 국정기조별로 경제부흥 33조9천억원(25%), 국민행복 79조3천억원(59%), 문화융성 6조7천억원(5%), 평화통일 기반구축 17조6천억원(13%) 등 총 134조8천억원이 들어갈 것으로 추산했다.

이에 따른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세입확충으로 50조7천억원, 세출절감으로 84조1천억원을 각각 확보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공약가계부는 국정과제 이행을 위한 구체적인 실천 계획이기도 하지만 세입·세출 구조를 정비하는 강도 높은 재정 구조조정 방안으로서 의미도 적지 않다.

세입 측면에서는 그동안 방만하게 운영돼왔던 조세감면제도를 정리하고 불공평한 과세를 걷어내며 세금탈루 행위를 막는 등 조세체계 전반을 재설계한다는 것이 정부의 계획이다.

이를 위해 세목 신설이나 세율인상 등 직접적인 증세는 피하고 비과세·감면 축소나 지하경제양성화 등 세원확대에 중점을 두기로 했다.

세출 측면에서도 비효율적인 재정지출과 중복·유사투자 등 그동안 지적돼온 재정낭비를 줄이는 '군살빼기'에 집중키로 했다.

특히 일시적인 세출 구조조정에 그치지 않고 법령 등 제도개선을 통해 항구적이고 전면적인 재정개혁을 추진하기로 했다.

정부는 이런 세입·세출 구조조정안을 담은 공약가계부를 향후 재정운용의 기준으로 삼는다는 계획이다.

실효성을 담보하도록 각 부처의 업무계획이나 예산편성, 국가재정운용계획 수립과정에도 반영하기로 했다.

◇ 경제여건 변하면 수정 불가피…재정 유연성 족쇄 우려
공약가계부는 경제상황이나 재정여건에 따라 실제 이행과정에서 변동할 여지가 크다.

특히 대내외적 경제여건이 세수확대에 유리하지 않다는 점에서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성이 떨어지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도 일각에서 나온다.

지난 이명박 정부도 '747 공약'(7% 성장ㆍ1인당 국민소득 4만달러ㆍ세계 7대 경제대국)을 내세웠지만 2008년 국제금융위기가 터지면서 물거품이 됐다.

세출 측면에서도 경제여건이 나빠지면 공약가계부의 이행계획이 오히려 재정운용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경기회복을 위해서는 과감한 재정확대 정책을 펼쳐야 하는 상황에서도 공약가계부 이행에 집착할 경우 재정의 유연성이 떨어져 효과적 대응이 어렵기 때문이다.

공약가계부는 정치적 갈등도 초래한다.

세출 구조조정은 경제적 사안인 동시에 정치적 이슈이기 때문에 이해관계자 간의 갈등은 불가피하다.

정부가 공약가계부에서 신규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축소를 못박자 여권 일각에서는 6월 지방선거에서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며 크게 반발하기도 했다.

이를 의식한 듯 정부도 공약가계부의 기본 골격은 계속 유지하되 매년 경제·재정여건 변화를 반영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이석준 기재부 제2차관은 사전브리핑에서 "공약가계부는 재정운용의 기본적인 틀이지 반드시 지켜야 할 금과옥조는 아니다"라며 "기본 골격과 기조는 유지하겠지만 변화하는 여건도 충분히 반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연합뉴스) 이지헌 기자 pan@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