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배냐, 권력싸움이냐…3개월째 빈 CIC회장 자리
4800억달러(약 535조원)를 주무르는 세계 최대의 국부펀드 중국투자공사(CIC)가 3개월째 수장 없이 표류하고 있다. 하마평만 무성한 가운데 일부에서는 정치권의 권력 투쟁으로 당분간 차기 회장을 임명하지 못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와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27일 중국 금융업계에 따르면 러우지웨이 전 CIC 회장이 지난 2월 재정부장으로 자리를 옮긴 뒤 중국 정부는 CIC 후임 회장을 임명하지 못하고 있다. 인민은행장을 비롯 공상은행 건설은행 등 4대 은행장 등의 인사가 모두 마무리된 가운데 유독 CIC 회장직만 공석이다.

이와 관련,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계파 간 정치 투쟁으로 중국 정부가 적임자를 고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현재 CIC 회장으로는 장젠친 공상은행장, 황치판 충칭시장, 가오시칭 CIC 사장, 투광샤오 상하이 부시장 등이 거론되고 있다. 초기에는 장 행장과 황 시장이 유력하다는 보도가 나왔지만 최근에는 가오 사장과 투 부시장 등이 부각됐다. 그러나 가오 사장과 투 부시장에 대해서는 일부 반대 세력이 있어 임명이 좌절됐다고 이 신문은 보도했다. 가오 사장은 해외 유학파 출신으로 영어가 유창하고 친개혁적 성향을 가진 인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그의 유학 경험이 고위공직자가 되는 데 오히려 걸림돌이 됐다는 분석이다.

중국 인사 문제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중국에는 당국으로부터 공식 인가를 받은 프로그램 외에 해외에서 유학한 사람은 부장(장관)급 정부 직책에 임명하지 않는 불문율이 있다. 이 신문은 또 “일부 보수파에서 가오 사장이 너무 자유분방하다는 비판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투 부시장도 최근 정치국 상무위원회 회의에서 최종 낙점을 받는 데 실패했다.

이 신문은 “시진핑 주석이 그의 임명에 반대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공산당 조직부에서 CIC 회장의 임명안을 보류한 것은 분명하다”고 지적했다.

반면 파이낸셜타임스(FT)는 내부 소식통을 인용, 이미 이뤄진 방대한 투자에 대한 책임 문제 때문에 CIC가 새 회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보도했다. FT는 투 부시장과 이강 인민은행 부총재가 회장직을 제의받았지만 이미 고사했다고 주장했다.

FT는 CIC 회장직이 ‘독배’로 여겨진다며 워낙 많은 곳에 투자해 그 결과를 책임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CIC는 2008년 금융위기 당시 모건스탠리와 블랙스톤 등에 투자했다가 엄청난 손실을 봤으며, 다른 부동산 및 사모펀드 투자 결과도 신통치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SCMP는 “CIC 회장의 공석 사태는 중국에서 중요한 의사결정이 얼마나 어렵고 느리며 불투명하게 진행되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지적했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