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포럼] 통계의 화장발
“난 하나도 없으니 누군가는 18개를 가졌겠군.” 얼마 전 ‘명품 1인당 평균 9개 보유’라는 기사를 본 사람들의 반응이다. 심지어 ‘대한민국 1%, 수입명품 100개 이상’이란 기사도 있었다.

제목만 보면 명품 붐을 개탄하거나 박탈감을 느끼기 딱 좋다. 하지만 이는 통계 오독(誤讀)일 뿐이다. 소비자원의 이 조사는 무작위로 추출한 1000명을 조사한 게 아니다. 명품을 구입한 1000명에게, 그것도 온라인으로 물어봤다.

명품 1~3개 보유자가 37.9%, 4~5개가 22.4%, 6~10개가 21.9%로 전체의 82.2%가 10개 이하였다. 50개 이상 보유자 3.4%(34명)가 평균치를 대폭 올린 것이다. 응답자의 중앙값(median)은 평균의 절반인 4.5개쯤이다. 특히 100개를 가졌다는 0.9%(9명)의 응답이 신뢰할 만한지, 이들을 대한민국 1%로 볼 수 있는지도 의문이다.

의도대로 각색, 입맛대로 해석

통계의 홍수 시대다. 너도나도 통계를 내고, 수시로 인용한다. 하지만 누가(조사주체), 누구를(모집단과 표본), 어떻게(기법), 왜(의도) 조사했는지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다. 통계 해석도 이념지향이나 활용목적에 따라 제각각이다. 그러니 통계가 새빨간 거짓말과 같은 부류로 취급되는 것이다.

최근 논란이 된 대체휴일제에 관한 설문조사부터 그렇다. 문화관광연구원 조사에선 찬성이 76.7%인데, 경영자총협회 조사는 반대가 85.3%다. 대체휴일제를 추진하는 문화체육관광부를 의식한 연구원은 휴일이 많을수록 좋은 직장인 1000명에게 물어봤다. 반면 경총은 휴일이 반갑지 않은 자영업자나 임시·일용직 1140명을 조사했다. 영호남에서 지지 정당을 조사한 꼴이다.

통계를 분식한 듯한 경우도 있다. 보건복지부는 2005년 담뱃값을 500원 인상한 뒤 이듬해 남성 흡연율이 44.1%로 2년 전보다 13.7%포인트나 급락했다고 자랑했다. 하지만 통계청이 조사한 2006년 흡연율은 52.2%로 격차가 컸다. 그랬던 복지부가 담뱃값 인상을 재추진하며 통계청 흡연율을 공식자료(작년 44.9%)로 쓰기 시작했다. 졸지에 흡연율이 4%포인트 이상 높아졌다.

숨은 암수(暗數)를 간과하면 통계가 실상을 과소·과대포장하게 마련이다. 영국에선 평생 섹스파트너가 여성은 2.9명, 남성은 11명이란 설문조사가 있었다. 남성의 과시욕과 여성의 내숭이 숨어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통계盲'이 정책오류 만든다

도덕적·정치적 구호로 통계를 읽으면 암수를 읽어내기 어렵다. 몇 해 전 우연히도 대형마트 매출이 9조원 느는 동안 재래시장은 9조원 줄었다는 통계가 나왔다. 정치권에선 이를 마트 규제의 빌미로 삼았다. 하지만 경제 규모 확대, 온라인몰 급성장 같은 시장 변화는 무시했다. 무상보육이 정부가 예상치 못한 보육수요를 끌어낸 것도 마찬가지였다.

객관적 통계와 정확한 통계 읽기는 선진사회의 필수조건이다. 라면이 익었는지 보려고 라면을 다 먹어볼 필요는 없다. 국내에선 386개 통계 작성기관이 904종의 국가승인 통계를 생산한다. 하지만 의도된 통계를 내놓고, 언론은 입맛에 따라 보도하고, 수용자는 별 생각 없이 맹신하는 일이 허다하다. 이는 통계품질 이전에 통계맹(盲) 차원의 문제다.

조작되거나 편향된 통계가 탁상공론식 정책을 쏟아낸다. 오도된 통계로 만든 정책일수록 경직적이다. 무상복지 경제민주화 등에 그런 오류가 없는지 꼼꼼히 따져볼 때다. 통계 마사지를 걷어내지 못하면 없느니만 못할 수도 있다. 아는 만큼 보인다지만, 보이고 싶은 만큼 드러내는 게 통계가 아닐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