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경제논리 對 정치논리
경제정책을 논의할 때마다 사람들은 경제정책은 경제논리로 풀어야지 정치논리로 풀면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제정책은 정치적으로 타협되기 마련이다. 왜 그럴까.

그것은 아무리 경제학자나 경제관료들이 경제적으로 최적인 경제정책을 만들어내더라도 결국은 국회에서 법으로 통과돼야 실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국회는 다양한 이익집단과 지역을 대표하는 국회의원들이 투표를 통해 의사결정을 하는 곳이다. 대부분 국회의원들은 자신이 대표하는 집단이나 지역의 이익을 위해 또는 자신의 이념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이 있다. 즉 정치논리로 정책을 결정하는 것이다. 그들에게 그 정책이 경제적으로 최적인지 아닌지는 별 의미가 없는 것이다.

국회의원들이 자신과 관련된 이익집단이나 지역의 의사에 반하여 투표할 경우 그 사람은 다음 선거에서 당선된다는 보장이 없다.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은 적어도 지역적인 압력에서 벗어나 소신껏 투표할 수 있다. 이것이 비례대표제도가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비례대표 의원들도 민주당 의원들이 민노총이나 전교조, 그리고 환경단체의 압력을 의식하듯 이념적 한계를 지니고 있다.

나 자신도 비례대표 시절엔 파생금융상품 거래세, 이슬람채권, 신공항 입지 등에서 비교적 경제논리에 입각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으나 지역구 의원이 되고 나선 지역의 이해나 종교단체의 견해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 농촌지역을 대표하는 새누리당 동료 의원도 한·미 FTA를 찬성하는 당론에도 불구하고 반대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수도 이전은 우리 역사상 가장 정치논리가 득세했던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적으론 아무리 봐도 비효율적이지만 대선을 앞두고 지역균형발전이라는 정치논리가 경제논리를 압도했던 것이다. 이미 예상보다 빨리 비효율이 가시화되고 있긴 하지만 다음 대선에서 충청도 표를 얻기 위해 어느 한 정파가 수도 완전이전을 공약으로 내세우면 어찌될까 하는 우려의 목소리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같이 경제정책의 결정이 정치논리에서 자유로울 수 없음은 불가피하지만, 지나친 정치논리에 의한 경제정책의 왜곡은 국가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

한때 많은 사람들이 가전제품 개방, 영화시장 개방을 결사적으로 반대했지만 결국 개방을 통해 우리의 가전제품은 일본을 누르고 세계일류가 되었고, 우리 영화와 드라마는 한류열풍을 일으키는 효자수출상품이 되었다. 지나친 경제논리도 비인간적이지만 정치논리에의 집착은 우리의 밥줄을 끊을 수 있다.

나성린 < 새누리당 국회의원 nasl@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