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경영권 관심없다" 對 현대그룹 "지분 즉시 넘겨라"

현대상선의 우선주 발행을 놓고 현대그룹과 현대중공업그룹이 재차 벌인 힘겨루기가 현대그룹의 승리로 일단락됐다.

비슷한 안건이 올라간 2011년 주주총회 당시에는 현대중공업이 KCC, 현대백화점, 현대산업개발 등 범 현대가와 연합해 정관변경안을 부결시켰으나 이번에는 현대중공업의 주도에도 범 현대가가 일제히 세를 보태지는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또 이 안건에 대한 투표에서 찬성 67.35%라는 결과가 나와 현대그룹 우호지분으로 꼽히는 47% 외에도 다수의 일반 주주가 현대그룹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기업 경영권을 놓고 일가가 다툼을 벌이는 양상이 외부에 극히 부정적으로 비친다는 점과 현대상선이 우선주 증자 추진의 이유로 내세운 대로 해운업 불황으로 손실 확대와 차입금 증가 등 어려움을 겪고 있어 유동성 확보가 절실하다는 사정이 고려된 것으로 분석된다.

현대중공업 관계자는 이날 주총이 끝나고 "반대입장은 주주 가치를 보호하기 위한 최소한의 요구였으며 따로 (반대하는) 세를 모은 것도 아니었다"며 "현대중공업은 현대상선 주식을 투자 목적으로 보유하고 있으며 경영권에는 관심이 없다"고 재차 강조했다.

이날 표결로 앞으로 현대상선 경영권을 둘러싼 분쟁의 여지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주총 의결로 바뀐 정관에는 우선주 발행한도를 2천만주에서 6천만주로 확대하는 방안 외에 이사회 결의만으로 제3자에 신주를 배정할 수 있는 대상을 확대하는 방안도 포함됐다.

우선주를 새로 발행하고 우호적인 제3자에 이를 배정한다면 현대상선에 대한 현대그룹의 지배력이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

그러나 경영권을 위협받을 수 있다는 현대그룹의 불안감이 아주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대중공업을 포함한 범현대가의 현대상선 지분은 현재 32.9%로, 이 지분이 유지되는 한 분쟁의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현대상선은 주총이 끝나고 낸 보도자료에서 "현대중공업 등은 빠른 시일 내에 보유하고 있는 현대상선 지분을 현대그룹에 넘기고 현대상선 경영권에 대한 욕심을 버리라"고 범 현대가에 촉구했다.

현대상선 측은 "그동안 말로만 화해 의지를 내세웠지 실제로 이뤄진 것은 하나도 없다"며 "회사가 돈이 필요해 두 차례 유상증자를 할 때 불참하는 등 책임은 방기하고 대주주의 권리 침해만을 주장하는 것은 책임있는 태도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현대중공업을 비롯한 범현대가는 현대그룹의 경영권에 미련이 없다는 주장을 꾸준히 하고 있으나 이 말을 실제 행동으로 옮기는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현대그룹 측의 반발이 전혀 근거없는 것이 아니라는 시각도 만만치 않다.

현대중공업그룹은 2006년 현대상선 지분을 매입해 '시동생의 난'이라는 세간의 평을 들었으며 이번 주총을 하루 앞둔 21일 오후 반대 의사를 밝히면서도 "주주의 신주인수권을 과도히 침해한다"는 이유를 들어 결국엔 경영권 분쟁이라는 해석을 낳았다.

현대건설을 놓고 격한 감정 다툼을 벌이며 고소전까지 벌였던 현대차그룹 역시 현대건설 인수로 가져온 현대상선 지분 7.1%를 그대로 들고 있다.

현대그룹은 그간 이 지분을 넘겨야만 완벽한 화해가 가능하다고 지속적으로 요구했으나 현대차그룹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당분간 현대차그룹이 일가의 분쟁에서 실리를 꾀할 수 있는 '캐스팅 보트'를 내놓을 리는 없으므로 외관상 중립을 지키며 '불편한 동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현대차그룹 한 관계자는 이날 주총에 현대건설이 불참한 이유에 대해 "경영권 관련 이슈에는 관여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김지연 전성훈 기자 cherora@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