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물산 '용산 랜드마크' 시공권 반납…29개 출자사, 조건부 기득권 포기
채무불이행(디폴트)에 빠진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정상화 쪽으로 물꼬가 트이고 있다. 삼성물산이 111층 랜드마크빌딩 시공권을 내놓는 등 민간 출자사들이 21일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로운 판짜기’에 적극 나서고 있어서다.

코레일과 출자사들은 부도 위기를 피해가면서 사업 규모를 축소하는 등 새로운 개발계획을 수립해나갈 방침이다. 하지만 서부이촌동 개발구역 포함 여부, 막대한 보상금 마련, 추가 투자자 유치 등의 과제가 산적해 있어서 정상화까지는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는 지적이다.

○출자사들 “부도 피하자” 공감대

용산개발 최대 주주인 코레일은 “‘용산사업 정상화를 위한 제안’에 대한 29개 출자사의 의견을 취합한 결과 출자사들이 수용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21일 밝혔다.

삼성물산 등 삼성그룹 계열사 5개사와 포스코건설·두산건설·계룡건설·우미건설·남광토건·유진기업·우리은행·CJ 등 13개 출자사는 별도 의견을 제출하지 않았지만 거부 의사는 아니라는 게 코레일의 주장이다.

용산개발에 출자한 17개 건설사 가운데 최대 지분(6.4%)을 보유한 삼성물산은 111층 높이의 랜드마크 빌딩 시공권(1조4000억원)을 내놓기로 했다. 코레일은 그동안 삼성물산이 투자한 전환사채(CB) 688억원을 돌려주는 대신 랜드마크 빌딩 시공권을 포기하라고 요구해왔다.

삼성물산은 세부 협의를 거쳐 25일께 수용 여부를 최종 통보할 계획이다. 삼성생명과 삼성SDS 등 4곳의 삼성그룹 계열사들도 삼성물산과 뜻을 같이하기로 한 만큼 코레일의 정상화 제안을 받아들인 것으로 해석된다.

GS건설 등 나머지 16개 건설사도 전체 공사의 20% 규모로 제한된 ‘시공권 보장 물량 비율’을 높여주고, 출자사 간 경쟁입찰 대신 출자 비율대로 공사물량을 배분해줄 것을 전제로 ‘조건부 동의’를 했다.

용산개발 디폴트로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한 롯데관광개발도 법원의 회생계획 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사업 정상화가 필수라고 판단, 코레일에 사업 주도권을 넘기기로 했다. 미래에셋 등 금융출자사(FI)들도 협조 의사를 전달했다.

출자사들의 반발이 컸던 상호 청구권 포기도 코레일이 “기존 사업협약과 관련한 소송을 내지 말자는 것이며, 향후 신사업 구도에서는 상호청구권 행사가 가능하다”고 밝혀 해결의 가닥을 잡았다. 건설출자사의 한 관계자는 “당장 부도로 사업을 청산하는 것보다 코레일을 믿고 사업을 재개하는 게 낫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코레일 ‘새판짜기’ 가속도

코레일은 이번 출자사 의견을 토대로 정상화 방안을 새로 마련, 25일 이사회에서 최종 승인을 받을 계획이다. 이어 내달 2일 열릴 시행사 드림허브 주주총회에서 코레일 주도의 새 사업협약을 확정할 방침이다. 이후 서울시 산하 SH공사 등이 참여하는 특별대책팀을 꾸려 연말까지 111층 랜드마크 빌딩 등 오피스시설 규모 축소, 상업시설 비중 하향 조정 등의 사업계획 변경안 마련에 나선다.

코레일은 앞으로 기존 출자사를 참여시키거나 새로운 투자자 유치를 통해 사업 자본금도 1조원에서 5조원으로 늘려 사업을 안정적으로 진행할 계획이다. 하지만 기존 출자사들이 추가 자금 조달에 부정적인 데다 부동산경기가 불투명해서 계획대로 실행될지는 미지수다. 개발업계 관계자는 “여태껏 해외 투자자는 홍콩 사모펀드의 CB 115억원이 전부였다”며 “결국 신규 자본 유치가 사업 성패를 좌우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