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자 몰래 계약서에 근저당을 해지할 수 있는 특약조항을 넣어 땅을 담보로 빌린 돈 수십억원을 가로챈 부동산 사기단이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서울지방경찰청 광역수사대는 부동산을 담보로 근저당을 설정하고, 계약서엔 작은 글씨로 특약조항을 넣어 근저당을 무효화 시키는 방법으로 2011년 6월부터 12월까지 피해자 8명에게 26억8000만원을 가로챈 혐의(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로 부동산 사기단 총책 윤모씨(48) 등 3명을 구속했다고 12일 밝혔다. 또 사기단을 도운 법무사 사무실 사무장 한모씨(50)등 17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달아난 2명을 쫓고 있다.

윤씨 등 사기단은 높은 이자를 미끼로 피해자들에게 접근했다. 의류 사업을 잠시 접고 쉬고 있던 신모씨(63)는 2011년 7월 지인에게 소개받은 최모씨(46)로부터 솔깃한 제안을 받았다. 자신이 렌트카 사업을 준비하고 있는데 사업 자금 4억원을 빌려주면 월 1200만원(3%)의 이자를 주겠다는 것. 사기단은 렌트카 사업은 자금 회전이 빨라 3개월 안에 돈을 갚을 수 있고,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시가 5억원 상당의 우모씨(62) 소유의 땅을 담보로 제공하겠다고 꼬드겼다. 신씨는 확실한 담보가 있기 때문에 공시지가 등을 확인하고 최씨에게 돈을 빌려줬다.

언뜻보면 이상할 게 없지만 계약서엔 함정이 있었다. 최씨가 계약서에 몰래 ‘특약 조항’을 끼워 넣은 것. 특약 조항은 ‘이 담보(우씨의 땅)는 매매계약이 해지될 경우 자동 무효로 한다’는 내용이었다. 신씨에게 4억원을 빌리기 이전 최씨는 우씨와 짜고 해당 토지를 살 것 처럼 가짜 매매계약을 체결한 상태였다. 최씨가 땅 매매에 대한 잔금을 지급하지 않으면, 담보는 특약조항에 따라 무효가 되는 방식이었다. 감쪽같이 근저당 설정을 무효화 시킨 최씨는 신씨에게 돈을 갚지 않았고, 신씨는 뒤늦게 계약 사항을 확인하고 발만 동동 굴렀다.

부동산 사기를 계획한 사기 전과 9범의 유씨는 법무사 사무실 사무장 3명과 공인중개사 2명 등도 사기단에 가담시키는 치밀함도 보였다. 신뢰감을 줄 수 있는 법무사 사무실 등에서 계약을 하면서 채권자가 계약서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는 점을 노린 것이다. 법무사 사무실 사무장은 특약 조항과 같은 계약상 중요한 내용을 설명할 의무가 있지만 수수료를 받는 조건으로 이를 숨겼다.

경찰은 신씨 외에 1억4000만~6억5000만원을 사기단에 빌려준 피해자 7명이 더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윤씨 등을 추적해 붙잡았다. 광역수사대 관계자는 “법무사 사무실에서 계약을 진행하더라도 계약서에 나온 항목들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김우섭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