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놓고 기획재정부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서로 다른 생각을 하고 있다. 당초 추경에 반대해온 재정부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 재원 마련과 관련, 뾰족한 안을 찾지 못하자 ‘추경 불가피론’을 들고 나오는 분위기다. 반면 인수위는 추경은 새 정부 출범 이후에나 고려해볼 사안이라며 인수위 단계에선 논의 대상조차 아니란 입장이다.

재정부 관계자는 3일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을 맞추려면 결국 차기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추경 편성이 불가피할 것으로 본다”며 “현재 추경 편성 요건이 제한적인 만큼 공약 재원을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면 관련 법 개정이 수반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현행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추경 예산은 △전쟁이나 대규모 자연재해가 발생한 경우 △경기침체, 대량실업 등과 같은 대내외 여건에 중대한 변화가 발생했거나 우려가 있는 경우 △법령에 따라 국가가 지급해야 하는 지출이 발생하거나 증가하는 경우 등에 한정된다.

재정부의 이 같은 입장은 그동안 균형 재정을 강조해왔던 당초 기조에서 한발 물러선 것이다. 박재완 재정부 장관은 지난 1월 신년사에서 “원칙은 한번 무너지면 바로 세우기 어렵기 때문에 ‘양보할 수 없는 원칙’은 끝까지 지켜야 한다”며 균형 재정에 대한 의지를 재확인했다.

재정부의 입장 변화는 공약 재원 마련이 쉽지 않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인수위 경제1분과는 1월 중순 재정부 업무보고에서 박 당선인의 공약 이행을 위해선 총 얼마의 재원이 필요하고, 재원 마련 대안은 무엇인지를 재정부에 짜 보고하도록 했다. 하지만 재정부는 공약 재원 추계조차 마무리하지 못해 1월 말 제출 시한을 넘겼으며 빨라야 2월 초에나 인수위에 전달할 예정이다.

재원 추계가 쉽지 않은 것은 박 당선인의 공약대로 세출 구조조정과 비과세·감면 축소,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연간 27조원의 재원을 마련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취득세 감면 연장에 따른 지방세수 감소분까지 중앙정부 재원으로 충당해야 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추경 불가피론이 제기된 것은 이 같은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인수위에서 추경은 여전히 ‘금기 단어’ 중 하나다. 인수위 관계자는 “지금 경기 상황이 과거처럼 재정을 일시적으로 쏟아부어 살아날 수 있는 것이냐, 아니면 구조적인 불황이냐부터가 확실하지 않다”며 “이런 경기 판단이 전제돼야 추경 논의를 할 수 있는데, 공약 재원 마련이 어렵다고 추경을 꺼내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경기 판단은 새 정부가 출범한 뒤 해도 늦지 않다”며 “인수위 단계에서는 단기 경기부양 논의가 적절하지 않다는 입장에 변함이 없다”고 못박았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