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에는 수없이 많은 것들이 공존한다. 빈자와 부자, 현대와 고대의 문명, 지극히 정신적인 것과 가장 물질적인 욕망이 뒤섞여 있다. 그 다채로운 세계에는 가장 아름다운 인간의 모습이 등 푸른 생선처럼 펄떡거린다. 그래서 사람들은 인도를 찾고 또 그 매력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인도에 도착해 흙냄새가 후드득 콧속으로 파고드는 순간, 낭만의 날개보다 현실의 퍽퍽함이 피부로 와 닿았다.

○소수종교로 쇠락 불교의 슬픈 그림자

마치 곡예를 하듯 거리를 재빠르게 파고드는 승합차를 타고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은 인도 최초의 정원식 무덤이라는 후마윤의 묘지다. 무굴제국의 두 번째 황제였던 후마윤의 묘는 그의 첫 번째 아내인 하지 베굼이 만들었다. 죽어서 더 화려해지는 것도 있으니 권력자의 무덤이 그런가보다. 정교한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그의 무덤에는 검은 그림자와 흰색 여운이 길게 드리워 있다.

웅장한 건축물의 묘미를 즐기고 있는데, 한 할머니가 소매를 잡아끌더니 건물 안쪽의 대리석 관으로 인도한다. 대리석 관 지하에 후마윤의 진짜 묘지가 있다며 자랑스러운 듯 손을 내민다. “10루피!” 주름진 그의 손에 10루피를 쥐어주었다.

인도는 그렇게 슬픈 가난의 모습으로 다가왔다. 인도 북부 여행의 핵심은 부처의 삶과 죽음의 자취를 따라가는 것이다. 선지자는 늘 고향에서 박해받는 법인가보다. 예수가 그의 나라 사람들에게 목숨을 잃었듯이 부처는 그의 고국에서 잊혀져갔다. 국민의 0.6%만 믿는 극소수의 종교로 전락해버린 인도 불교는 이웃나라인 태국 미얀마 라오스는 물론 중국 한국 일본에서 더 존중받는 종교가 됐다.

현재 인도에서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종교는 힌두교다. 인도 사람 82%가 믿는 절대 다수의 종교이기에 거리 곳곳에는 힌두교와 관련된 성물과 상징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수없이 많은 힌두교의 신 가운데 가장 영향력이 있는 신은 브라흐마(창조의 신)와 비슈누(법의 화신), 시바(파괴의 신)다. 작은 골목 어귀에도, 상점 아래 귀퉁이에도, 교차로의 중앙에도 성전이 있고, 이들 세 신의 흔적을 찾을 수 있다.

힌두교의 광채에 눌려 변방의 종교로 쇠락했지만 불교의 탄생지답게 북부 인도에는 불교 유적지가 수없이 많다. 사실 불교 유적지 순례는 쉬운 일이 아니다. 워낙 인도라는 나라가 거대하다보니 유적지와 유적지 사이를 이동하는 데에만 기차로 하루 이상 걸리는 곳이 태반이다. 예전 고승들은 성지순례를 하다 불귀의 객이 되기도 했다. 길도 험하고 사방에 산적까지 설치다보니 성지순례는 목숨을 건 고행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다 몇 해 전 일명 ‘대열반열차’라는 것이 생기며 순례길이 순한 여행지로 바뀌었다. 부처의 출생지에서 열반에 이른 곳까지 빠짐없이 순례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식사와 숙박까지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길은 멀고 험했다. 델리 사프다르정 특별역에서 출발한 열차는 밤새 쉬지 않고 달려 무려 12시간 만에 부다가야에 도착했다. 기차가 도착하면 어김없이 “부담 샤르남 가차~미”라는 범어 계송이 열차 안을 흔들어 놓는다. 새벽 안개를 뚫고 기차역을 나서면 스카프를 두른 인도인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을 던지곤 했다. 부다가야는 카필라국의 태자였던 고타마 싯다르타가 깨달음을 얻은 장소다. 싯다르타는 부다가야의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생과 사의 이치를 깨달았다. 물론 현재의 보리수나무는 당시 싯다르타가 앉아 있던 자리의 그 보리수는 아니다. 아마도 그 후손쯤 되는 나무이리라. 그곳에는 전륜성왕으로 불리는 아소카대왕이 세운 마하보디 사원이 위용을 과시하고 있다. 각국에서 온 수행자들이 보리수나무 근처에서 정좌하고 앉아서 부처의 그윽한 체취라도 느끼고 싶은지 연신 오체투지로 자신의 몸을 낮춘다.

○인도의 모든 것 담긴 바라나시 풍경

사람들은 바라나시를 영원 불변의 도시라고 했다. 히말라야에서 발원한 갠지스(강가) 강물이 모이는 신령한 장소인 데다 2000년의 세월을 견뎌온 힌두교 성지여서다. 전설에 따르면 강가는 원래 천계(天界)에 흐르던 강이었다고 한다. 강가 주변의 풍경에는 삶의 모든 신산한 모습들이 그대로 담겨 있다. 강의 상류에서는 죽은 이를 화장(火葬)하는 모습과 바로 그 아래서 물을 마시거나 목욕하는 사람의 모습이 동시에 포착된다. 윤회의 굴레를 벗고 극락으로 향하려는 이들의 성스러운 의식이다.

신성한 곳에서도 삶은 이어진다. 화장한 시신과 온갖 오물이 떠다니는 하류에서 물을 길어 밥을 하는 모습은 생경함을 넘어 충격적이다. 생명이 돌고 도는 윤회의 법칙처럼 인간의 육신이 타고 스러지면 그 스러진 물을 먹고 생을 이어간다. 사진 속에 화장장 풍경을 담으려고 하자 성난 표정의 인도인이 카메라를 막아선다. 사진을 찍으면 영혼이 사진기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생각하는 이들이니 사진기를 들이대는 모습이 무례하게 느껴졌을 것이다.

강물은 하염없이 흘러간다. 스쳐가는 일상의 모든 것들이 강가에 있으면 하찮게만 느껴진다. 가트(계단) 주변은 번잡하다. 갠지스강을 향해 무언가 염원하는 이들, 묘기를 보여주며 루피를 구걸하는 아이들의 표정 없는 얼굴까지 겹쳐 강가는 삶의 모든 것을 숨김없이 보여주는 연옥처럼 느껴진다.

곧이어 강가 여신에게 바치는 제사인 푸자, 아르티가 시작됐다. 어둠 속에 하나둘 촛불이 켜지고, 저녁 강가에서 화려한 제사의식이 펼쳐진다. 젊은 힌두교 사제들이 음악에 맞춰 횃불을 들고 현란한 춤을 춘다. 몽환적인 노래가 흘러나오고 사람들은 그 불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간다. 이 소박하며, 화려하고, 현실적이며, 환상적인 장면이 뇌리에 박힌 사람들은 몇 번이고 인도를 찾고, 또 바라나시로 향한다. 바라나시를 기점으로 기차는 부처의 출생지와 열반지를 차례로 따라갔다.

열반으로 세상이 끝나는 것도 아니고 태어남으로부터 죽음이 먼 곳에 있는 것도 아니다. 쿠시나가르에서 석가모니는 ‘춘다’라는 신도가 공양한 버섯(혹은 돼지고기라는 설도 있다)을 먹고 탈이 나서 며칠을 앓다 열반에 들어간다. 완전한 깨달음을 이룸과 함께 생사의 굴레에서 벗어났는데도, 또 자신의 죽음 정도는 알고도 남는 신통력을 갖췄는데도 석가모니는 자연의 법칙에 몸을 맡겼다.

쿠시나가르의 열반당은 소박하기 그지없다. 온화와 미소를 띤 거대한 와불만이 당시 모습을 재현해 줄 뿐이다. 부처의 탄생지는 네팔 룸비니에 있다. 싯다르타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이 싯다르타를 낳은 마야데비 연못과 사원을 지나 카필라성 주변을 돌아보았다.

○가슴까지 서늘하게 하는 타지마할

인도여행의 끝은 아그라다. ‘인도의 상징’이라고 해도 무방한 아그라의 타지마할은 무굴제국의 5대 황제였던 샤 자한의 부인인 뭄타즈 마할의 무덤이다. 그녀는 무척이나 영민했고 아름다웠다. 샤 자한 황제는 그녀를 너무나 사랑했지만 이별은 언제나 갑자기 찾아오는 법. 뭄타즈 마할은 출산하는 도중 세상을 떠났다. 마침내 그는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무덤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무려 22년간이나 계속된 무덤 건축에 인부 20만여명, 코끼리 1000마리가 동원됐다. 동서양의 문화적 정수가 모두 모여 있다는 게 놀랍다. 이란 출신의 기술자가 설계를 맡고 이탈리아 프랑스 터키 중국 등 다양한 국적의 기술자들이 최고의 걸작을 만들기 위해 몰려들었다. 타지마할의 장식에는 모자이크의 일종인 피에트라 두라 기법이 사용됐다. 꽃 모양의 문양을 대리석에 판 뒤 그 홈에 각기 다른 색의 돌이나 준보석을 박아놓은 것이다.

인도의 정수가 깃든 곳에서의 마지막은 행복했다. 거짓말처럼 아름답고 누추하고 생경했던 곳. 머리보다 가슴에 먼저 와닿아 비추던 작은 햇살을 기억한다. 몸은 인도를 떠났으나 인도는 다시 마음속에 살포시 내려앉았다.

최병일 여행·레저 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 여행 팁

불교 성지순례길, 공인 가이드 동행하는 대열반열차 운행

인도 음식의 중심은 카레다. 카레가 빠진 인도 음식은 상상할 수 없다. 카레는 강황 생강 고추 등을 섞은 노란색의 자극성 강한 가루로 닭고기 돼지고기 시금치 등을 같이 넣어서 수프처럼 만든다.

북부 인도에서는 밀가루로 만든 로티(차파티, 난)가, 남인도나 벵골에서는 쌀밥이 주식이다. 차파티는 밀가루 반죽을 둥글고 얇게 구운 것. 난은 차파티보다 약간 고급 밀가루를 사용하고, 크기도 다르다.

인도 북부 여행길이 마하 파리니르반(대열반)이라 불리는 스페셜 열차가 생기면서 편안해졌다. 성지 여행 시 인도 정부가 공인하는 전문 가이드가 동행해 성지에 관한 재미있는 이야기를 곁들여준다.

열차에는 2~4인용 침대칸이 마련돼 있다. 성지 외에 여러 곳을 둘러보고 싶다면 성지순례열차를 3일 동안만 예약해 이용하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도 된다. 오는 9일과 23일, 3월9일과 30일 인도 델리에서 출발한다.

대열반 열차 전체 일정은 8일이며 기차요금은 1박당 1등석 160달러, 2등석 130달러, 3등석 110달러. 1등석 2인실 사용시 150달러를 더 내야 한다. 8일 모두 이용하면 1등석 1120달러, 2등석 910달러, 3등석 770달러가 든다. 인도철도관광 한국지사(irctc.kr)에 문의하면 된다. (02)575-7767

인도에 입국하려면 비자가 필요하다. 인도비자센터(blsindiavisa.kr/aboutus.html)에서 발급을 대행하며, 6개월 복수 비자 기준으로 7만4000원(수수료·스캔서비스 포함)이 든다. 룸비니에 가려면 네팔 비자도 필요하다. 국경에서 바로 발급받는데 30달러와 여권용 사진이 필요하다. 북인도의 겨울 날씨는 생각보다 꽤 서늘하다. 긴팔 옷을 충분히 준비하는 편이 좋다.

인도는 외교통상부의 여행경보제도에서 가장 위험 수위가 낮은 ‘여행유의단계’ 국가로 분류되고 있지만 치안 상태가 그리 좋지 않은 편이어서 여성 혼자 여행하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현지인이 지나치게 친절하게 대한다든가 음료수 등을 권하면 가급적 사양하자. 인도정부관광청 홈페이지(incredibleindia.co.kr)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