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출기업 '환율 전쟁' 속수무책] 이익 집어 삼키는 '환율 공포'…자동차·IT 4분기 실적 휘청
‘환 위험’이 한국의 대표 수출기업을 덮치고 있다. 각국 정부가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무제한으로 풀어대면서 원화가 달러뿐 아니라 유로, 엔화 등 주요 통화에 대해 모두 강세를 보이고 있는 탓이다.

아직까지는 해외 매출을 원화로 환산했을 때 발생하는 손실이 대부분이다. 일본과 경쟁하고 있는 자동차업계에서는 엔저(低)가 이어지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어닝 쇼크’가 고착화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제기된다.

삼성전자 “올해 3조원 이상 피해”

“올해 환율 변동으로 인해 부정적 영향이 3조원을 넘을 것이다.” 이명진 삼성전자 IR팀장은 25일 4분기 실적발표 콘퍼런스콜에서 이같이 말했다.

삼성전자가 환율 변동으로 입은 손해는 지난 3분기 5700억원, 4분기 3600억원에 이른다. 이달 들어 원·달러 환율이 1060원대까지 떨어져 추가적인 하락이 없어도 올해 3조원 이상의 환차손이 예상된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현대자동차와 기아자동차도 4분기 각각 1000억~2000억원의 환율 변동 피해를 입었다. 다음주 실적을 발표하는 LG전자 SK하이닉스 등도 상당액의 환차손이 예상된다.
[수출기업 '환율 전쟁' 속수무책] 이익 집어 삼키는 '환율 공포'…자동차·IT 4분기 실적 휘청
원화가 강세를 보이면 수출 기업들은 두 가지 피해를 입는다. 하나는 해외에 물건을 판 뒤 받는 달러, 유로의 가치가 떨어져서 발생한다.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해외에서 물건이 안 팔려 2차 피해가 이어진다.

환율 변동으로 인한 피해는 자동차와 정보기술(IT)산업이 가장 크다. 수출 비중이 높아서다. 하나대투증권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할 때마다 영업이익이 3000억원 줄어든다. 또 LG전자는 766억원, LG디스플레이는 700억원이 감소한다. 현대차의 경우 원·달러 환율이 10원 하락하면 매출은 0.3%, 영업이익은 0.9% 줄어든다. 기아차는 매출 0.6%, 영업이익 1.7%가 감소한다.

현대차그룹 관계자는 “현대·기아차의 수출 비중은 75~80%에 달해 원·달러 환율이 10원 떨어지면 2000억원의 매출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여기에 라이벌인 일본 차가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판매를 늘릴 경우 피해는 심각하게 나타날 수 있다.

◆뾰족한 대책 없어

삼성전자 LG전자 등은 매출의 80~90%가 전 세계에서 수십여개 통화로 발생하기 때문에 원래부터 환 헤지를 하지 않는다. 특정 통화가 오르면 또 다른 특정 통화는 내리는 원리를 활용해 자연적인 헤지를 활용해왔으나, 원화가 모든 통화에 대해 강세를 보일 경우 대책이 없다. 그동안 원재료를 살 때 외화 비중을 높이거나 해외 생산 비중을 늘리는 식으로 환 위험을 피해 왔지만 완전한 헤지는 불가능하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단기적 대응보다는 원가 절감 등을 통해 근본적인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자동차업계는 더 심각하다. 글로벌 생산 판매량의 30~40%를 국내에서 생산하기 때문이다. 달러화 대비 원화 강세에다 엔화가치 하락세가 계속돼 라이벌인 일본차의 가격 경쟁력이 살아나고 있다. 이런 추세가 장기화할 경우 원화로 환산한 이익이 줄어드는 것과 함께 실질적인 매출 감소가 나타날 수 있다.

현대·기아차는 1분기 원·달러 환율이 1060원대로 사업계획 기준환율인 1056원에 근접한 가운데 하반기까지 원화 강세 기조가 이어질 것으로 보고 전방위 환율 대응 전략을 가동하고 있다. 결제통화를 달러화에서 유로 등 기타 통화로 다변화하는 전략을 가속화하고 환 헤지도 강화한다. 국내 생산물량도 현대차는 전년 대비 3.2%, 기아차는 0.2% 줄인다.

기아차는 수출차 판매단가를 높이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또 유럽과 미국 등에 신차와 부분개선 모델을 출시, 환율 변동에 따른 손실을 신차 출시를 통한 평균단가(ASP) 인상으로 만회한다는 전략이다. 현대차와 기아차 모두 신차 개발에 필요한 플랫폼(차량 뼈대) 숫자를 줄이는 등 원가 절감에도 돌입하기로 했다.

김현석/이태명 기자 realis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