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헤이글 미국 국방장관 지명자는 상원의원이던 지난 2003년 이라크 침공을 주장하던 공화당 동료 의원들에게 "전쟁이 무엇인지 제대로 아느냐"며 쏘아붙였다.

전우가 바로 옆에서 처참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직접 지켜본 자신과 달리 참전 경험도 없으면서 전쟁에 대해 막연한 환상을 갖고 있다는 질타였다.

그는 전쟁을 지지하는 사람들을 향해 "정글과 참호에 웅크리고 앉아 총탄에 전우의 머리가 부서지는 모습을 지켜본 나와 같은 참전 용사들의 현실감을 결여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당시 매파 진영은 헤이글을 `유화주의자'로 몰아세웠고 결국 헤이글의 목소리는 묻혀 버렸다.

그와 같은 조심스런 접근법이 9.11 테러 이후에도 여전히 미국을 `허약한 나라'로 비치게 한다는 논리의 승리였다.

조지 부시 행정부의 외교·안보 정책을 주도했던 강경 보수세력인 `네오콘'이 10년 전과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헤이글을 향해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1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는 네오콘이 국가적 논란의 중심 무대로 회귀한 것을 의미한다는 점에서 특별히 주목된다.

네오콘은 과거보다 존재감은 다소 떨어지지만 여전히 공화당 정책에서 결정적인 영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나 중동정책 등을 둘러싼 논란에서 공화당에 이론적 지침을 제공하는 세력도 이들이다.

헤이글이 국방부의 수장이 되는 것은 민주주의의 전파를 위해 군사행동도 불사하고 잠재적 위협에는 선제적 공격으로 대응해야 한다는 철학을 가진 네오콘의 패배를 의미한다.

전쟁에 대한 국민적 비판에 직면하면서 몸을 낮춰온 네오콘이 다시 전면에 나서는 것은 이런 위기감 때문이다.

헤이글 국방장관 인준 반대 운동의 선봉에는 보수성향 주간지 위클리스탠더드의 윌리엄 크리스털 편집장이 서 있다.

이라크 침공을 열렬히 지지했던 그는 "헤이글 지명자와 그의 지지자들은 네오콘을 와해시켜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리고 있는 것 같다"고 공세를 퍼부었다.

매파 진영은 헤이글이 상원에서 이란 제재 조치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이스라엘에 대해 강경한 태도를 고수한 데 대해 더욱 우려한다고 크리스털 편집장은 설명했다.

헤이글이 결국 성공작으로 평가받는 이라크 병력 증강에 반대했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이란과 이스라엘에 대한 그의 태도는 매파 진영에서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 심하다는 것이다.

크리스털 편집장은 "유대인들의 로비 행위가 워싱턴DC 정가를 위협하고 있다"는 헤이글의 2006년 발언을 상기시키며 본인이 이스라엘의 확고한 지지자라는 주장도 "말이 안되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그러면서 헤이글과 같은 사람들은 "네오콘이 영구히 퇴출돼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사실 네오콘은 부시 행정부 때보다는 위상이 못하지만 정치 무대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결코 아니다.

네오콘의 대표적인 인사들이 지난 2008년과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존 매케인과 밋 롬니 공화당 후보의 핵심 참모로 활약했다는 점이 이를 증명한다.

정치권에서는 헤이글의 인준안이 결국은 통과될 것이라는 견해가 우세하지만 TV광고와 언론 기고문, 의회에 대한 압력 등을 통해 그를 낙마시키려는 네오콘의 노력은 마지막까지 지속될 것으로 본다.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은 "네오콘 입장에서 실전 경험이 있고 사업가로 성공했으며 무력 이외의 대안이 있다고 생각하는 상원의원 출신이 국방장관이 되는 것은 최악의 악몽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아미티지는 부시 행정부 시절 온건파인 파월 전 장관과 함께 네오콘과 결별했던 인물이다.

파월 전 장관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지지했다.

(뉴욕연합뉴스) 정규득 특파원 wolf85@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