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선수가 좋은 기록을 내려면 일정 수준의 근육과 유연성을 필요로 한다. 긴 팔과 다리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뛰어난 신체적 조건을 갖추고 있어도 물의 저항력 자체를 무력화시킬 수는 없다. 있는 힘껏 물을 내리쳐도 저항력만 커진다면 빨리 나아갈 수가 없다. 최적의 영법은 완벽한 경제성을 추구하는 데서 나온다. 경지에 오른 수영선수들은 수면을 치더라도 그들 앞의 물을 부드럽고 평탄하게 유지시킨다. 그들은 저항력이 허락하는 한계 내에서 꾸준한 속도로 엄청난 거리를 주파한다.

미국 Fed는 왜?

한 나라가 잠재성장률에 도달하는 경로도 영법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잠재성장률은 물가상승에 대한 우려없이 노동 자본 기술 등의 생산요소를 활용해 달성할 수 있는 최적의 성장률을 뜻한다. 물가상승에 대한 부담이 ‘물의 저항력’이라면 노동 자본 기술은 ‘신체적 조건’으로 치환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수영과 경제는 닮았다. 한계와의 싸움이다. 수영장처럼 저항력이 일정하다면 내재적 역량을 극대화할수록 좋은 기록(성장률)을 낼 수 있다. 반대로 물살이 일정하지 않은 곳이라면 저항력(외부변수)의 변화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할 수 있는 운용능력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 경제는 어디로 가고 있는 것일까. 새로운 기록을 내기 위한,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수영선수의 몸가짐과 비교하면 어떨까. 지난주 미국 중앙은행(Fed)은 ‘물가상승률 2.5%를 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실업률이 6.5% 이하로 떨어질 때까지 양적완화를 하겠다’고 발표했다. 경기가 살아날 때까지 사실상 무제한 돈을 풀겠다는 예고였다. 좀 의아스러웠다.

올 들어 미국 제조업과 부동산 경기가 살아나고 있다는 보도가 많았기 때문이다. 실제 올해 미국의 실질성장률 전망치는 지난해보다 0.4%포인트 높은 2.2%다. 그럼에도 Fed가 극약처방에 가까운 대책을 내놓은 것은 ‘확실하게 경기를 살리겠다는 신호를 보내야겠다’는 의지의 소산이다. 앞날에 대한 불확실성 때문에 금고와 지갑을 닫고 있는 기업과 소비자들에게 안심하고 경제활동에 나서라는 선도적 사인이다.

누가 국민을 이끌 건가

하지만 우리에겐 미국과 같은 절박함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행은 Fed의 무제한 양적완화 발표 직후에도 기준 금리를 동결했다. “경기가 더 이상 나빠지지 않을 것 같다”는 이유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고 하니 그 자체로 존중받을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정부는 정권 교체를 앞두고 눈치만 보고 있다. 당선자의 성향에 따라 경기대응책을 달리하겠다는 태도다. 경제가 6분기 연속 0%대 성장을 기고 있는데도 성장담론을 빠뜨린 대통령 선거판을 굳이 탓하고 싶지 않다. 여야 후보의 시국관이 그 정도라면 어찌하겠는가.

그렇게 우리는 ‘각자도생’으로 가고 있다. 그 사이에 기업과 국민들은 어떤 사인도 받지 못하고 있다. 누구도 “우리의 판단과 선택을 믿고 따라달라”고 하지 않는다.

경제에는 되돌릴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이 있다. 금리와 환율, 규제는 신축적이다. 시장 원리, 시장 여건에 따라 선택할 수 있다. 반면 한번 손상된 성장잠재력은 좀처럼 되돌리기가 어렵다. 저성장 국면에선 특히 그렇다. 경제주체들도 기대치를 점차 낮춰가기 때문이다. 이는 수영선수가 새 기록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몸 상태를 최적으로 만들 유인이 없다는 얘기다. 앞으로 10년을 더 간다는 불황이다. 성장률에는 부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실질성장률과 잠재성장률의 격차, 이른바 GDP갭이 벌어지는 것은 곤란하다. 19일 대통령 당선자는 이것부터 공부해야 한다.

조일훈 경제부장 ji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