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 정부 교육정책의 핵심은 학교 교육의 자율성과 다양성 확대다. 이명박 대통령이 국정 과제의 하나로 제시한 고교 다양화 프로젝트는 이 점을 분명히 대변하고 있다.

지난해 곽노현 전 서울시교육감은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던 ‘고교선택제 전면 폐지 또는 개편’을 지키려는 작업에 들어갔다. 그에 따라 시교육청은 그동안 사실상의 고교선택제 폐지를 의미하는 ‘거주지 내의 학군에서만 학교를 선택하는 A안’과 고교선택제의 축소를 의미하는 ‘인접 학군의 학교를 지원하는 B안’ 등 두 가지를 놓고 저울질해왔다.

하지만 두 안 모두 모의 배정을 해본 결과 문제가 발생했다. A안은 한 학급의 학생 수가 40명을 넘는 과밀 문제가 나타났다. B안은 인기 학교의 주변에 사는 학생들이 가까운 그 학교를 두고 다른 학군으로 가야 하는 등 본인이 희망하는 학교에 배정받지 못하는 비율이 높아지는 현상이 나타났다.

런 이유로 곽 전 교육감이 이끄는 시교육청은 고교선택제 폐지를 유보하기로 했다. 결국 정책을 추진해야 할 교육당국조차 아무런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손을 놓아버린 상황이다. 고교 진학을 앞두고 있던 학생들은 혼란에 빠졌고 폐해는 고스란히 학생과 학부모가 짊어져야 했다.

시행 초기 단계인 국가 정책에 대해 그 공과(功過)를 면밀히 따지지도 않고 성급하게 폐지하거나 대폭 개편하겠다는 발상은 위험하다. 정권이나 인물에 따라 국가 정책이 좌지우지된다면 국정 운영이나 철학이 바로 설 수 없으며 그 폐해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특히 한 인간의 전인적 성장을 목표로 하는 교육 부문은 더욱 위험하다.

더 좋은 학교 가고 싶어하는 학생들 욕구 막으면 안돼

시교육청이 작년에 발행한 ‘서울특별시 후기고등학교 학교 배정 방안 연구’에 따르면 학부모들은 대체로 고교선택제가 긍정적인 효과를 거두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1학년 학부모들에게서 더 크게 나타났으며 △이사를 가지 않고도 원하는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다 △교사들이 더 열심히 가르치기 위해 노력한다 △다른 지역에 사는 친구와 교류할 가능성이 커진다 등의 항목이 특히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고교선택제는 교육 기회의 평등성을 확보한다. 시교육청은 2010년부터 학교 선택권 확대 정책을 본격적으로 시행했다. 그 핵심은 ‘교육 기회의 평등성 확보’에 있었다. 1974학년도부터 34년간 유지돼온 평준화 제도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학교의 교육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는 시대적·사회적 요청을 적극 반영한 것이다.

특히 도시환경 변화, 교통 수단의 다양화로 학교군 광역화가 가능해졌고 학생과 학부모의 희망을 존중해 배정 방식을 개선하자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됐다는 점이 고교선택제를 가능하게 한 요인이다.

교 선택권 확대 정책을 도입하게 된 가장 큰 배경은 기존 거주지 중심 배정으로 인해 한 지역의 학습 집단을 구성하는 학생들이 사회 계층적으로 지나치게 동질화했다는 점이다. 거주지가 학교 배정으로 똑같이 이어지면서 강남 아이들은 강남 학교에만, 강북 아이들은 강북에만 모이게 된 것이다. 이는 강남 학군 등 특정 지역에 대한 선호도가 편중돼 지역 간 위화감이 팽배해지는 결과로 이어졌다. 교육의 평등권이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는 것이다.

또 일반 추첨 배정으로는 학교의 건학 이념, 종교, 전통, 교육과정 등 각 학교의 특성을 고려한 학교 선택 기회가 제한받았다. 학군 간 학생 수 불균형으로 일부 지역은 학생 배정의 어려움이 지속적으로 커졌다. 현재 제한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선(先) 복수 지원, 후(後) 추첨’ 배정 방식으로는 학생과 학부모의 희망을 제대로 반영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시행 3년 만에 고교선택제는 나름의 성과를 거뒀다. 2012학년도 일반 배정 대상자 7만9747명 가운데 87.1%에 해당하는 6만9460명이 1, 2단계에서 지원한 학교 중 한 곳을 배정받았다. 2011학년도에는 86.4%, 2010학년도에는 84.2%의 학생이 1, 2단계에서 지망한 학교에 배정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1, 2단계에서 희망 고교에 합격하는 비율이 해가 바뀜에 따라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현행 고교선택제가 문제가 있다면 보완책을 마련하면 된다. 모든 교육정책은 시행착오를 겪게 마련이다. 학생과 학부모, 교사와 학교의 상황이 때에 따라 부단히 변하기 때문이다.


학부모도 긍정적 여론 높아…기피 학교엔 재정지원 집중을

첫째, 단기적으로는 비선호 학교를 위한 행정·재정적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시교육청은 혁신학교를 지정해 학교당 2억원 가까운 큰 예산을 추가로 지원하고 있다. 이 재원을 비선호 학교들에 돌려야 한다. 학교별 특성에 따라 맞춤형 지원을 한다면 학교들도 학생을 유치하기 위해 수요자 중심의 경쟁력 있는 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학교가 변하면 서울과 한국 교육의 경쟁력이 높아질 것이다.

째, 기피 학교라고 해서 재정 지원을 줄이거나 문을 닫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다양한 행정·재정적 지원으로 학교가 소외받는 요인을 찾아 없애야 한다. 공교육의 질을 전체적으로 업그레이드하는 상향 평준화의 관점에서 제도가 운영돼야 한다.

셋째, 일선 학교들이 재원을 좀 더 자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학교별 특성화를 통해 투입 자원 대비 효과를 높이는 방향을 찾아야 한다. 학교별로는 산적한 다른 과제들로 인해 특성화 전략을 세우기 어려운 곳도 많다. 시교육청은 이런 학교들에 대해 경영 컨설팅을 해주며 재정 운용 가이드라인을 제시해줘야 한다.

더 좋은 학교로 가고 싶어하는 학생과 학부모의 욕구를 인위적으로 막을 수는 없다. 학부모와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인정해야 한다. 자립형 사립고, 특목고뿐만 아니라 특성화 학교, 자율학교 등을 더욱 확대해 고교 유형을 다양화하고 일선 학교들의 자율성을 지속적으로 늘리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준순 < 서울교원단체총연합회 회장 >

△서울대 국어교육 학사 △성균관대 교육대학원 수료 △전 교육과학기술부 학교지원국, 교육복지국 국장 △수도여고 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