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선거일이 코앞이다. 닷새면 새 대통령이 나온다. 희망과 기대로 부풀어 있어야 할 것 같지만 어쩐지 좀 그저 그렇고 마음 한 구석이 썰렁하다. 언뜻 대선 후보들의 공약과 구호들 가운데 ‘국민행복’이란 말이 눈에 띈다. 아 그랬지. 국민을 행복하게 해주는 게 정치의 목적이라고, 자신을 당선시켜 주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 드리겠다고. ‘국민행복추진위원회’라는 기구까지 만들어 경제민주화니 민생, 복지, 여성행복이니 하며 꿈과 행복의 범벅질이 한창이다.

정치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겠다니 가상하다 해야 하는지 모르지만 믿기지 않는다. 가만 생각해보니 턱도 없는 소리다. 감언이설 냄새가 물씬 풍긴다. 행복은커녕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 장본인이 바로 정치 아니었던가. 제발 우리를 더 불행하게 만들지만 않아도 그저 감지덕지일 터.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국가의 역할이라는 ‘행복의 정치학’을 탓하는 게 아니다. 부의 다과로 측정되는 물질적 풍요가 아니라 국민이 누리는 삶의 질과 행복이 중요하다는 생각, 문화적 전통과 환경 보호, 부의 공평한 분배를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높이겠다는 부탄의 국정 철학에서 비롯된 국민총행복지수(Gross National Happiness)라는 발상에 토를 달려는 게 아니다. 다만 한 가지 분명히 해 둘 게 있다. 행복, 그것도 국민행복을 정부가 나서서 약속하는 것은 잘못된 환상을 심는 일이라는 사실이다. 현실을 직시하자. 행복의 정도와 수준을 잴 수는 있을지라도 정부가 국민에게 행복을 배달할 수는 없다.

행복이란 우리 모두가 잘 알다시피 결국 인생관, 가치관의 문제다. 정부가 이래라 저래라 정해 만들어 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개개인이 스스로 일궈 나갈 가치와 인식의 문제다. 정부는 고작 국민의 행·불행에 신경을 쓰고 무엇보다도 국민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과 조건을 없애거나 줄여줌으로써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 뿐이다. 정부 본연의 임무는 국민을 행복하게 만드는 게 아니라 불행의 원인과 조건을 해결해 주는 데 있다. 그러니 감히 국민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나서지 말고 차라리 더 불행해지지 않도록 삶의 조건을 개선하는 데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얘기다.

우리 시대 불행의 원인은 무엇인가.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드는 원인은 삶의 조건이 그 어느 때보다 피폐해지고 개선될 조짐조차 없다는 것이다. 벌써 10년을 넘긴 경기침체, 중산층 몰락으로 더욱 악화된 양극화현상 등 불행의 조건들이 도처에 깔려 있다. 게다가 격차사회의 불공정성과 정부의 무능과 부도덕 때문에 사람들은 분노하고 낙담한다. 대통령이 되고자 나선 인물들이 이 불행의 문제를 해결할 의지와 역량을 가지고 있을까.

만일 정부가 경기를 살리고 불행의 조건들을 하나둘 없애 나갈 수만 있다면 나머지 그 위에서 행복을 일구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몫이다. 그러니 제발 부탁드린다. 새로운 정부를 이끌겠다면 이런저런 속보이는 행복 공약들을 내세워 섣부른 행복환상을 부추기지 않길 바란다. 차라리 사람들이 불행의 나락에 빠지지 않도록 돕고 국민의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말하자.

그리고 고통에 관한 또 다른 진실.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주려면 부와 기회의 재분배가 필요하다. 특히 예산과 재정자원의 재분배는 필경 고통의 재분배를 수반한다. 동반성장은 실현될 수만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바람직하지만 종종 많은 경우 제로섬 게임으로 끝나게 마련이고 따라서 고통의 재분배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동반성장, 포용적 성장을 추구해야 하겠지만 나라 전체 부의 증가가 경제적 약자의 후생을 누진적으로 향상시키는 결과가 되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그 많은 행복 공약들을 늘어놓았으니 그 이행과정에서 누가 얼마나 고통을 부담해야 하는지도 밝혀야 한다. 유감스럽게도 국민행복을 얘기하면서 누가 그 밑거름이 돼 고통을 짊어져야 하는지 밝히고 설득하는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이제 결정의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불편한 현실과 마주할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얘기다. 국민에게 행복보다는 고통을 얘기하는 자 누구인가. 무조건, 닥치고 찍을 일이 아니다.

홍준형 <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joonh@snu.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