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식적인 일은 딱 질색이다. 나이나 자리를 앞세워 행세하는 것도 별로다. 어떤 일을 맡든 앞장서서 일해 성과를 내야지 뒷짐 지고 앉아 폼만 잡는 노릇은 못한다. 감투를 꺼렸던 것도 그래서였다. 생각을 바꿔 사회 활동을 시작한 건 회갑을 넘기고 나서다.

미당 서정주 시인은 ‘나를 키운 건 8할이 바람이었다’라고 했지만, 오늘의 나를 만든 8할은 어쩌면 이웃과 사회였다 싶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나와 가정, 회사를 위해 일했다면 이제부터는 무엇이든 세상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서울대 경영대학 최고경영자과정(AMP) 총동창회장을 맡은 것도 그런 생각에서다. 동창회장을 하자면 무엇보다 시간을 많이 빼앗긴다. 동창회 일은 사업과 다르다. 사업상 업무는 갑을 관계로 이뤄지지만 동문 사이엔 갑을이 따로 없다. 그만큼 복잡하고 어렵다.

서울대 최고경영자과정은 국내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최고의 CEO과정이다. 동문만 4500여명에 이른다. CEO들은 뒤늦게 다시 시작한 학창 생활을 통해 경제 경영은 물론 각 분야의 지식과 흐름을 배우는 건 물론 폭넓은 친교를 쌓는다. 수업 후 삼삼오오 모여 소주잔을 기울이고 골프도 치며 세상 돌아가는 얘기를 나눈다. 때로는 수업보다 방과 후 시간이 더 유익하다.

나 역시 20년 전 AMP 과정을 이수하면서 동기생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중소기업이던 스페코를 상장시킬 수 있었던 것도 그 덕이다. 그런 만큼 힘들 줄 알면서도 기꺼이 총동창회장이란 짐을 졌다. 우리 사회엔 수많은 동창회가 있다. 대부분 친목 도모와 모교 및 후배 지원을 주목적으로 삼는다. 동문 간 우의를 돈독히 하는 건 소중한 일이다.

그러나 AMP 동창회는 좀 달랐으면 싶었다. 회장이 되자마자 ‘즐겁고 유익하며 보람있게’를 캐치프레이즈로 내걸었다. 회원 모두 동조했다. 골프대회를 개최한 뒤 동창회 이름으로 사회단체에 일정액을 기부한 건 물론 대회에서 상을 받은 기와 개인들까지 상품과 상금을 기꺼이 기부용으로 내놓았다.

서울대 AMP 총동창회에선 며칠 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제1회 자선 송년음악회’도 연다. 1년을 돌아보면 특별히 좋은 일이 없었어도 고맙고 다행스러운 일은 적지 않을 것이다. 그런 마음을 어려운 이들을 돕기 위해 나눈다면 보다 뜻깊은 해걷이가 되지 않을까.

기업의 CEO는 몸으로 하는 일보다 네트워크와 경제적 여유라는 강점을 살릴 수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 청소년 문제에 대한 관심도 그중 하나라고 본다. 초·중·고생의 경우 보이스카우트나 걸스카우트에 참여하면 태도부터 달라진다. 교육과학기술부에서 1인 1악기 운동을 펴고 있거니와, 기업들은 ‘1사 1학교 헬스클럽 만들어주기’ 캠페인 같은 걸 펼쳤으면 싶다. 청소년들이 ‘몸짱 만들기’에 나서면 담배는 자연히 안 피울 테고 한층 건강하게 성장할 게 틀림없다. 훗날 성인병이나 암도 예방하게 될 테고, 국가의 건강보험료 지출 역시 줄어들 것이다. CEO가 할 수 있는 일은 실로 무궁무진하다.

김종섭 < 삼익악기 회장 Jenice0812@samic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