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수진 비단길 대표(45·사진)는 ‘늑대소년’으로 한국 멜로영화 사상 최다 관객 기록을 세웠다. 지난 10월 말 개봉해 10일 현재 680만명이 관람했다. 한국 멜로영화 흥행 기록인 ‘건축학개론’의 410만명을 깼다. 김 대표는 4년 전 스릴러 ‘추격자’(513만명)로 대박을 터뜨렸다. ‘음란서생’(257만명)과 ‘작전’(156만명)에 이어 ‘혈투’(5만명)까지 5편을 제작해 ‘혈투’를 제외한 4편을 성공시켰다. 서울 잠원동 근처 한 식당에서 그를 만났다.

“팬들의 반응이 뜨거워요. 이 영화를 45번이나 봤다는 여자분이 있어요. 하루에 두 번 봤다는 얘기예요. 철수가 불쌍해 울었다는 여학생들도 많아요. 커플 관객 중에는 멋있는 송중기에 비해 남자친구가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비쳐져 싸움을 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전체적으로 6 대 4의 비중으로 여성 관객이 많다. 초반에는 20대 여성이 압도적으로 많았다가 나중에는 남성들의 예매율이 크게 올라왔다. 요즘에는 30~40대 주부들이 많다고 한다.

“독창적이고 따뜻하고 재미있는 영화지요. 여성 관객들이 특히 좋아해요. 인스턴트 사랑이 넘쳐나는 시대에 평생 나만을 기다려줄 남자에 대한 여자들의 로망을 충족시켜주거든요.”


영화는 6·25전쟁 직후 국군이 실험실에서 강한 인간을 만들려다 부작용으로 태어난 변종인간인 철수의 순수한 러브스토리다.

할리우드 영화 속 늑대인간과는 달리 한국적인 요소도 넣었다고 한다. 6·25전쟁이란 특수상황, 전쟁고아라는 설정, 낯선 아이도 집안에 들여와 밥을 먹여주고 목욕을 시켜주는 것 등은 한국적인 인심이란 얘기다.

“멜로영화 최고일 뿐 아니라 10월과 11월 개봉작 중 최대 관객이에요. 멜로영화 장르를 확장시킨 게 비결이에요. 멜로에다 판타지와 액션 등의 요소를 넣어 다양한 계층을 만족시켰어요.”

연쇄살인 실화에서 모티브를 얻은 스릴러 ‘추격자’의 흥행 비결도 들려줬다. ‘추격자’ 이후 충무로에는 스릴러 붐이 일어났다.

“위기에 빠진 한 여자를 구하기 위해 밤 새도록 뛰어다니는 이야기였죠. 관객은 그녀가 어디에 잡혀 있는지 알지만 주인공은 몰랐죠. 거기서 긴장감이 나왔습니다. 나쁜 놈이 더 나쁜 놈을 잡는 플롯도 특이했죠.”

김 대표는 국내 제작자 중 드물게 미국에서 정식으로 영화를 공부한 이력의 소유자다. 1989년 이화여대 독문과를 졸업한 직후 하명중영화제작소에 입사해 영화제작과 기획, 극장업무까지 두루 익혔다. 2년 뒤 영화센터란 영화사를 설립해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 ‘꽃잎’ 등의 한국 영화를 기획하는 한편 외화 ‘퐁네프의 연인들’ ‘레옹’ 등을 수입해 상영했다. ‘레옹’은 대박을 거뒀지만 당시 수익금 16억원은 고스란히 사기를 당했다.

1999년 전셋집을 처분해 미국영화연구소(AFI)가 운영하는 영화 석사과정에 입학했다. 졸업 후 워너브러더스 자회사에서 시나리오를 검토하는 일을 집중적으로 하다가 2004년 귀국해 비단길을 설립해 본격 영화 제작을 시작했다. “관객들은 늘 새로운 이야기를 원하고 있어요. 흥행 요소 중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작가에게 큰 틀을 제안하고 작업과정에서 일부 상황에 대해 조언을 하는 식으로 협의해 시나리오를 완성합니다. 기획과 제작자로 장수하기를 바랍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