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을 열흘도 채 안 남겨둔 현재 ‘노동법 전면 재개정’을 둘러싸고 노사관계가 다시 요동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노동계는 정치권을 압박하면서 입법투쟁을 강화하고 있으며, 정치권은 노동계의 표심을 노리고 경쟁적으로 노사관계 관련 제개정 법안을 발의하고 있다. 이미 40여개의 법안이 국회에 쌓여 있는 데다 여야를 막론하고 노조강화 및 노동보호 위주의 공약을 내놓고 있어 그동안 안정 기조를 보이던 노사관계가 불안해지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미 제출됐거나 앞으로 발의될 것으로 보이는 법안을 보면 거의 전부가 노동보호 위주의 법안이다. 그 주요 내용은 근로시간 단축, 기간제 및 파견 근로자 관련법 개정, 사내하도급 근로자 보호, 특수고용형태 종사자 보호, 최저임금법 개정, 기타 근로기준법 개정 등이다.

이런 법안들은 나름대로 의미를 갖고 있다. 세계적으로도 최장의 근로시간을 단축하는 문제는 우리의 오랜 과제이며, 비정규직을 비롯한 취약 근로자에 대한 법제적 보호는 반드시 필요하다. 경제발전과 민주화에 부응해 근로기준법도 일부 손질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각 법안의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적지 않은 쟁점이 도사리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근로시간 단축은 그에 따른 임금 조정 문제를 안고 있으며, 비정규직은 그 자체로만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 사내하도급은 근로자와 원청·하청 사용자와의 관계규정이 예민한 문제이며, 특수고용형태는 종사상의 지위라는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도 정리해고 문제를 재론하고 있다. 이렇게 보면 어느 법안 하나 대수롭지 않은 것이 없다.

따라서 실제 법안의 처리에서는 보다 진지한 검토와 신중한 처리가 요청된다. 이들 법안과 관련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완화하겠다는 목적의식이 투철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노동시장은 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비정규직 사이에 현격한 격차로 대변되는 이중구조로 이뤄져 있다. 따라서 고용만이 아니라 노사관계 관련 입법은 반드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염두에 두고 그 해소 내지는 완화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를 고려하지 않은 입법조치는 의도치 않은 부작용을 초래하기 십상이다. 주변부 근로자의 이익을 명분으로 하면서 중심부의 기득권에는 전혀 손대지 않는 입법은 이중구조를 완화하기는커녕 도리어 비용전가를 통해 이중구조를 심화시킬 수 있음을 경계해야 한다.

이와 더불어 또 다시 쟁점이 되고 있는 법안은 복수노조와 노조 전임자 급여 관련 개정안이다. 교섭창구 단일화를 폐지함과 동시에 근로시간면제제도를 없애고 전임자 급여를 노사자율로 하자는 내용이 그 골자다. 이는 종전의 노·사·정 합의를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입법을 추진한다는 점에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는 신의성실의 원칙에 배치되는 반개혁적인, 일부 노조간부만을 위한 저급한 정치행위에 다름아니다. 조합원은 물론 근로대중의 삶의 질 개선과는 거리가 멀기 때문이다.

교섭창구 문제는, 교섭의 결과가 소속 조합원에게 차별적으로 적용되는 것이 아닐진대 별도 교섭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창구단일화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노조간부 위주의 발상이다. 법률형식적인 교섭권 문제를 내세우지만 현행법은 노조가 자율적으로 교섭대표단을 구성하는 것을 우선하고 교섭창구 단일화의 방안을 단계별로 명시해 교섭권을 보장하고 있다. 산업현장에서 사용자의 개입으로 교섭권에 문제가 야기된다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지배개입의 문제로 조치돼야 할 사안이지 창구단일화를 무력화할 명분이 되지 못한다.

전임자 급여 문제는 엄격히 말해 노사자율이 아니라 노조 자율 사안이다. 노조의 자주성과 민주성을 신장시키기 위해 노조 전임자에 대한 급여는 궁극적으로 노조가 전적으로 부담하는 것이 옳다. 근로시간면제제도는 노조의 사정을 고려해 과도기적으로 시행되고 있는 제도인 만큼 노동계가 선도적으로 자체부담을 선언하고 재정자립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정치권의 지원도 이 방향이어야 한다.

김대환 < 인하대 교수·경제학 Dae-Hwan.Kim@inha.ac.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