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표 기업인 LG전자에 고졸 사장이 탄생한 것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조성진 신임 LG전자 사장은 공고 출신으로 LG전자 세탁기를 세계 1등으로 만들고 최고경영자 자리에 올랐다. 인화를 강조하던 LG가 보수적 기업문화를 일신, 실적을 최우선의 가치로 존중하는 인사 기준을 보여준 것이다. 능력만 있으면 누구나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학벌 중시 풍조에도 큰 경종을 울렸다.

실적을 최우선의 가치로 삼겠다는 것은 구본무 회장의 강력한 의지라고 할 수 있다. 구 회장은 최근 “어려울 때 실력이 나오는 법”이라며 계열사 CEO들의 분발을 촉구하고 시장 선도 능력을 강조한 ‘뉴 LG웨이’를 천명하기도 했다. 이번 인사를 통해 최고경영자가 되기 위해선 학벌이나 학력 같은 포장이 아니라 최고가 될 수 있는 실력과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아울러 서열이나 줄이 아니라 철저하게 실적을 중심으로 인사하는 관행을 만들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LG의 파격은 경영환경의 변화에 따른 것으로 볼 수 있다. 세계 휴대폰 시장에서 10%대의 점유율을 자랑하던 LG전자가 불과 6개월 늦게 스마트폰을 시작하면서 혹독한 대가를 치른 데 대한 처절한 반성이다. 1등을 하거나 시장의 판도를 좌지우지할 능력이 없으면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는 냉엄한 현실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방심하거나 나태해지는 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만큼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의 생존전략이라 할 수 있다.

LG의 이번 인사는 비정상적으로 학력과 학벌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4대그룹 계열사에선 고졸 출신 사장이 전무했고 그외 다른 대기업에서도 거의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고졸자에게 학벌은 거대한 진입장벽이었다. 하지만 대학졸업장이 아니라 실력이 존중받는다는 게 증명됨으로써 실적을 기준으로 한 경쟁의 룰이 성립됐다. 학력 인플레에 멍들어 있는 한국 사회에 올 들어 고졸 취업에 대한 새로운 인식이 생겨나고 있는 상황에서 LG그룹의 인사가 갖는 의미는 더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LG뿐 아니라 다른 기업에서도 제2, 제3의 조성진이 탄생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