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영국 맨체스터대의 가임 교수와 그 제자인 노보셀로프는 그들의 연구에 스카치테이프를 사용했다. 테이프에 흑연을 묻힌 뒤 20번 정도 붙였다 뗐다를 반복하자 과학계가 수십년간 찾던 소재가 얻어졌다. 바로 그래핀이다. 두 과학자는 그 업적으로 2010년 노벨 물리학상을 받았다. 1991년에는 관(tube) 모양의 탄소나노튜브가 발견돼 나노시대를 활짝 열었다.

한동안 탄소는 부정적 이미지로 비쳐졌다. 탄소라고 하면 우선 공장의 굴뚝에서 나오는 검은 그을음을 연상한다. 그런데 세계가 다시 탄소에 주목한다. 그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첫째, 탄소소재가 갖는 무한한 가능성이다. 그래핀의 예를 들어보자. 그래핀은 쉽게 말해 우리가 연필심으로 알고 있는 흑연을 얇게 편 물질이다. 두께는 0.3나노미터(약 30억분의 1m)로 세상에 존재하는 가장 얇은 소재다. 그런데도 강철보다 200배 이상 강하고 구리보다 100배 이상 전기가 잘 통한다. 마음대로 구부릴 수 있으며 접힌 상태에서도 전기가 통한다.

둘째, 인류가 직면한 난제 중 하나인 기후변화를 풀 수 있는 해법을 담고 있다. 탄소는 화석연료의 주성분으로 연소 과정에서 산소와 결합해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킨다. 환경오염의 원인물질이지만 아이로니컬하게도 이산화탄소 저감을 위해 없어서는 안 될 소재이기도 하다. 태양전지용 전극, 2차전지용 음극재료, 전기자동차용 전력저장장치 등 신재생에너지 또는 친환경 기기에 들어가는 핵심 소재의 상당 부분이 탄소소재로 대체될 것이다.

탄소소재는 산업 전반을 변화시킬 것이 확실하다. 다만 한국의 경우 산업 기반이 상당히 취약한 편이다. 탄소섬유 인조흑연은 전량 수입에 의존하고 있으며, 기타 주요 탄소소재도 수입의존도가 60%에 이른다. 희망적인 것은 그래핀의 경우 아직 상용화 전 단계이고, 우리가 핵심기술을 상당량 보유하고 있어 부지런히 노력하면 시장 선도가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에 따라 정부는 체계적 지원을 통해 탄소소재산업인 C-산업을 본격 육성할 계획이다. 듀폰은 1930년대 나일론, 1970년대 고어텍스를 개발해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섰다.

한국은 그 같은 소재기업을 길러내지는 못했다. 그러나 산업 발전 과정에서 고도의 환경 적응력과 순발력, 그리고 집약적인 기술축적 능력을 보여줬다. 우리의 능력과 잠재력을 감안할 때 C-산업 분야에서 이제 한국도 듀폰과 같은 초일류 기업을 배출할 날이 머지않았다고 확신한다.

김재홍 < 지식경제부 성장동력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