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이 조직의 모든 것을 결정할 수는 없습니다. 자발적인 참여로 시너지를 내 생존을 위한 담보력을 높여야 합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따로 또 같이 3.0’의 방향을 이렇게 설명했다. 그는 “회장보다 이사회 의장이라 불리는 게 더 좋다”며 “사실 회장이라는 것도 편의상의 직급”이라고 했다. SK가 계열사 최고경영자(CEO)들이 참여하는 위원회 중심으로 경영구조를 바꾸는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한다. 다음달 말이나 내년 초 인사 이후 ‘따로 또 같이 3.0’ 체제가 본격적으로 작동한다.

지주사 권한을 6개 위원회로

‘따로 또 같이 3.0’은 최 회장이 6명의 위원장 중 한 명이 되는 것처럼 오너로 대표돼온 지주회사도 SK의 여러 계열사 중 하나가 되는 것이 핵심이다. 지주회사에 집중돼 있던 권한을 계열사로 분산시키고 위원회 차원의 신속한 의사결정으로 속도전에 나서겠다는 구상이다.

이에 따라 연말 그룹 인사와 지주회사 (주)SK가 맡고 있는 기존 역할을 각 계열사들로 이관하는 후속작업이 맞물려 돌아갈 것으로 전망된다. 그간 지주회사는 사업과 전략, 재무와 인사, 홍보와 마케팅 등을 총괄하며 계열사에 관여해왔다. SK그룹 관계자는 “지주회사는 계열사 의사결정에 전혀 참견하지 않게 된다”며 “브랜드 관리 등 자체 기업가치 제고를 위한 업무 중심으로 영역이 재편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재무팀의 계열사별 경영실적 평가는 지주회사가 기존처럼 계속 맡을 예정이다.

SK는 2007년부터 전략위원회, 글로벌성장위원회, 동반성장위원회를 가동해왔고 여기에 지난 5월부터는 인재육성위원회, 윤리경영위원회, 커뮤니케이션위원회를 시범 운영해왔다. 이 6개의 위원회는 기존 지주회사의 일부 역할을 나눠 맡는다.

위원회는 실행 조직을 따로 두지 않고 계열사 대표들이 모여 협의하는 형태다. 예를 들어 글로벌성장위원회에 SK이노베이션, SK네트웍스, SK E&S CEO가 참여하는 식이다.

‘따로 또 같이 3.0’ 배경은

최 회장이 지주회사의 몸집을 줄이고 한 위원회를 맡아 전문경영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겠다는 것은 소유와 경영 분리의 중간단계라는 분석이 나온다. 동시에 오너 한 사람에 집중되는 위험 부담을 줄이려는 의도도 있다. SK그룹 관계자는 “불확실성이 커진 경제 환경 속에서 전문성을 갖춘 계열사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것”이라며 “빠르게 변하는 국내외 경영여건에 능동적으로 대응하고 위험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고 말했다.

경제민주화를 앞세운 정치권의 재계 압박과 다음달 28일 선고를 앞둔 최 회장의 재판도 이 같은 수평·분산형 경영구조 개편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경영구조 개편의 실효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부회장단 대신 위원회를 만들어 형식만 바뀔 뿐 내용에 변화가 있겠냐”며 “주요 계열사의 전략이나 투자가 회장의 재가 없이 이뤄지긴 힘들 것”이라고 말했다.

회장 아래 위원회라는 단계가 추가돼 옥상옥 구조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위원회 내 계열사들의 업무와 이사회와의 갈등 조정도 남은 과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윤정현/정성택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