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의 내년 최저임금이 지역에 따라 40~50% 올라 현지에 진출한 한국 기업에 비상이 걸렸다. 임금 폭등에 따른 대량 해고 사태가 벌어질 것이란 우려도 나오고 있다.

26일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인도네시아 언론 등에 따르면 한국 기업들이 밀집해 있는 자카르타와 베카시가 내년 최저임금을 올해보다 각각 44%와 50% 인상하기로 결정했다.

수도 자카르타시는 최저임금을 올해 153만루피아(약 17만3000원)에서 내년에 220만루피아(약 24만8000원)로 올리기로 했다. 한국타이어가 글로벌 제7공장을 짓고 있는 베카시의 최저임금은 올해 140만루피아에서 내년에 210만루피아로 오른다. 한국 신발업체가 많이 있는 탕그랑 지역도 노동조합 등이 최저임금을 153만루피아에서 236만루피아로 54% 올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인도네시아는 다음해 최저임금을 지역별 노·사·정 임금협의회가 합의해 연말에 결정한다. 하지만 민선 자치단체장들이 노동단체의 과격 시위에 굴복해 임금 인상을 수용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최저임금이 대폭 오를 것으로 예상되자 인도네시아 경영자총회와 상공회의소 등은 물론 한국상공회의소와 미국상공회의소 등 외국 단체도 인도네시아 정부에 적극적인 대책을 요구하고 나섰다. 송창근 한국상의 수석 부회장은 “최저임금 인상안이 이대로 확정되면 한국 기업 및 협력업체에서만 14만명 이상의 감원이 불가피하다는 뜻을 인도네시아 정부에 전달했다”고 밝혔다.

한국상의가 현지 한국 기업들을 대상으로 임금 상승 대책을 조사한 결과 50만여명을 고용하고 있는 한국 봉제업체 및 협력업체에서 10만명가량의 감원이 불가피한 것으로 나타났다. 신발업계와 전자업계에서도 3만명과 1만명 수준의 감원이 예상됐다.

한국상의는 급격한 임금 상승과 노동시장 불안에 대한 대책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인도네시아 정부에 촉구하는 한편 최저임금 인상안 시행 유예를 위해 인도네시아 경제단체와 협력하기로 했다.

현지 한국봉제협의회 관계자는 “감원 등 대책을 세울 수 있는 업체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라며 “생산비 가운데 임금 비중이 매우 높은 봉제 하청업계에선 내년에 폐업하는 업체가 상당수 나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인도네시아뿐만 아니라 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등 한국 기업이 다수 진출해 있는 동남아시아 국가들도 최저임금을 인상했거나 인상을 검토 중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태국 정부는 지난 4월 방콕 등 7개 주요 도시에서 하루 최저임금을 300바트(약 1만1109원)로 이전보다 40%가량 올렸다. 저소득 노동자층의 소득 증대를 위해서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다.

베트남 정부도 일반 노동자의 최저임금을 내년 1월부터 인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럴 경우 수도 하노이와 호찌민의 최저임금은 270만동(약 15만원)으로 올해보다 35%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내년 1월부터 최저임금 제도를 도입하기로 했다. 수도 쿠알라룸푸르의 경우 평균급여는 800~900링깃(약 29만~32만5000원) 수준이 될 전망이다.

니혼게이자이는 “동남아 국가들이 잇따라 최저임금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최저임금을 인상하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평가받는 국내 소비(내수)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강동균 기자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