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전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의 정치 행보만큼이나 파란만장했던 ‘안철수 테마주’ 드라마는 비극으로 끝났다. 실적 뒷받침 없이 급등한 종목이 언젠가는 맞이할 수밖에 없는 필연적 결말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선을 20여일 앞두고 투자자들은 ‘박근혜 테마주’와 ‘문재인 테마주’에 달려들고 있다. 대선이 끝날 때까지는 ‘폭탄 돌리기’가 계속될 것이고 그 전에 차익을 실현하면 한몫 챙길 수 있다는 투기 심리가 작용한 탓이다. 전문가들은 정치테마주의 거품이 빠지기 시작했다며 최소한 어느 한쪽은 대선 결과에 따라 안철수 테마주와 비슷한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고 경고한다.

◆말 한마디로 시작된 랠리

정치테마주의 ‘위험한 랠리(주가 상승)’가 본격화한 것은 지난해 8월부터다. 안철수 테마주의 선봉이라고 할 수 있는 안랩은 지난해 8월1일 9.05% 급등한 채 마감했다. 당시 노무현재단 이사장이었던 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가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영입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 계기가 됐다. 이후 안 전 원장이 서울시장 후보로 거론되고 유력한 대선 주자로 떠오르면서 안랩은 작년 7월 말에 비해 최고 573% 상승하기도 했다.

‘대세론’의 주인공이었던 박근혜 테마주는 이보다 앞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자동차부품 업체 대유에이텍은 최대주주가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의 조카사위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지난해 1월부터 급등했다.

올 들어서는 문재인 테마주가 가세했다. 문 후보는 지난 1월 한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고 트위터를 통해 정치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내놓는 등 보폭을 넓히기 시작했다. 대선 주자로서 문 후보의 움직임이 가시화하면서 우리들제약우리들생명과학 바른손 등 문재인 테마주도 급등하기 시작했다.

우리들제약과 우리들생명과학은 최대주주가 친노 그룹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문재인 테마주로 분류됐다. 바른손은 문 후보가 과거 대표 변호사로 있었던 법무법인 부산의 고객 회사라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문재인 테마주에 합류했다.

◆당국 경고에도 추종 매매 지속

금융당국은 작전세력을 조사하는 등 단속에 나섰지만 큰 효과를 얻지 못했다. 정치테마주는 금융감독당국이 강력 단속 방침을 밝히면 잠시 수그러들기도 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급등했다. 한쪽을 누르면 다른 쪽이 튀어오르는 ‘풍선효과’도 나타났다. 안철수 테마주는 안랩에서 시작돼 잘만테크 우성사료 써니전자 미래산업 오늘과내일 등으로 확산됐다. 금융당국이 정치테마주로 분류하고 있는 종목은 130여개에 달한다.

정치테마주 움직임을 단순히 작전세력의 주가조작 행위로 볼 수는 없다는 분석이다. 정치테마주 시가총액이 급증해 작전이 어려워졌을 뿐만 아니라 당국의 경고에도 주가 급등이 지속되는 것은 단기 시세차익을 노린 개인투자자의 ‘추종 매매’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김건섭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수차례 경고를 했는데도 투자를 계속하는 것은 당국으로서도 어쩔 수 없다”며 “정치테마주 대부분은 사실 정치인이나 정책과는 관련이 없는 종목들”이라고 말했다.

◆거품 붕괴 신호

대선 때까지는 테마주 열풍이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창수 금감원 자본시장조사1국장은 “저금리와 부동산 시장 침체까지 겹쳐 마땅한 투자처가 없는 것도 테마주가 기승을 부리는 배경”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박근혜 테마주와 문재인 테마주도 대선 직후엔 급락, 투자자들에게 큰 손실을 남길 가능성이 높다고 전문가들은 경고한다. 테마주 거품이 이미 빠지고 있는 신호도 감지된다. 박근혜 테마주와 문재인 테마주 중에서도 일부는 올 들어 기록한 최고가에 비해 최대 60% 이상 하락했다.

유승호/김동욱 기자 ush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