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류 경쟁률만 수십대 1…대졸자 70% 재수·삼수로
파리바게뜨로 유명한 SPC그룹이 지난 4일 마감한 대졸(졸업 예정자 포함) 신입사원 원서 접수에는 1만2200여명이 지원서를 냈다. 이 중 16일 서류전형을 통과한 지원자는 800명 남짓에 불과했다. 서류전형 경쟁률만 15 대 1이 넘은 것. SPC그룹 관계자는 “최종 합격자 숫자를 100명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데 너무 많은 지원자가 몰려 누굴 붙이고 누굴 떨어뜨려야 할지 우리도 곤혹스럽다”고 토로했다.

올 하반기 채용 시즌이 막바지로 접어들고 있지만 청년층 취업난은 좀처럼 풀리지 않고 있다. 괜찮은 일자리는 웬만해선 서류전형 통과도 장담하기 어려울 정도다.

지난해 영국 유명 대학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1년 가까이 중국 어학연수를 다녀온 김재훈 씨(26·가명). ‘취업 스펙’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그는 최근 쇼크를 받았다. 20여개 대기업에 입사원서를 냈는데 단 5곳만 서류전형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그동안 해외에서 공부하느라 미쳐 느끼지 못했는데 이제야 취업난을 실감하게 됐다”며 혀를 내둘렀다.

대학생들이 선망하는 금융권은 취업난이 훨씬 심하다. 서류전형에서 탈락하는 지원자가 워낙 많다보니 서류전형 합격자가 몇 명인지 조차 쉬쉬하는 분위기다.

취업난으로 재수, 삼수를 거듭하는 ‘취업 장수생’들도 늘어나는 분위기다. 직원 수 500명가량의 모 중견기업 인사담당자는 최근 10여명의 신입사원을 뽑기 위해 채용공고를 냈다가 눈이 휘둥그레졌다. 1100여명의 지원자 중 내년 졸업 예정자는 340명가량에 그쳤고 나머지 760여명은 이미 대학을 졸업한 상태였기 때문이다. 이 담당자는 “지원자의 70%가량이 취업 재수, 삼수생”이라며 “올해 유독 이런 현상이 심한 것 같다”고 말했다.

대학생들이 느끼는 취업난은 통칭 ‘문·사·철(文·史·哲)’로 대표되는 인문계 학생들의 경우 특히 심각하다. 이 때문에 이른바 ‘취업 인기학과’에는 복수 전공 학생들이 넘쳐난다. 고려대에서 학생들을 상대로 1 대 1 취업 상담을 해주고 있는 이국헌 경영학부 교수는 “고대 경제학과 정원이 160명 정도인데 복수전공자를 통해 경제학과 졸업장을 받는 학생은 매년 800명 정도”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청년 취업난은 각종 통계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10월 고용동향’을 보면 전 연령대를 통틀어 유독 20대만 취업자 수가 줄었다. 특히 대졸(전문대졸 이상) 실업자가 32만1000명에 달하며 1999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처음으로 고졸 실업자(30만4000명)를 앞질렀다. 경기 침체로 괜찮은 일자리가 줄어든 측면도 있지만 대졸자들이 눈높이를 낮추지 않는 것도 한 원인이라는 지적이다.

주용석/이정호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