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패배를 마주해야 할 때
설악산행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오는 고속버스에서였다. 벌써 5년 전 일이다. 막장 드라마를 방불케 하는 치열한 레이스를 마감하는 8월2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였다. 패배가 확정된 박근혜 후보가 소란 속에 단상에 올랐다. “경선 패배를 인정합니다. 그리고 깨끗하게 승복합니다” 또박또박한 목소리가 울려퍼졌다. 그는 “이명박 후보님, 축하합니다. 경선은 이제 끝났습니다. 경선 과정에서의 일들은 모두 잊읍시다. 하루아침에 잊을 수 없다면 몇날 며칠이 걸리더라도 잊읍시다”라고 연설문을 읽어 내려갔다.

고속버스에서의 TV화면은 터널을 지날 때마다 치지직 소리를 내며 끊어졌다. 승객들은 그렇게 패배자 박근혜의 진정한 웅변을 들었다. 참모들은 당초 두 개의 연설문을 준비했다고 한다. 후보 수락과 패배 승복 연설이었다. 천당과 지옥이었다. 패배를 가정한 연설문은 박 후보가 직접 몇 번을 손질했다. 참모들은 무언가 시빗거리를 남겨놓아야 나중에 정치적으로 재기할 수 있다는 요지로 연설문을 작성하기를 고집했다. 그것을 ‘깨끗한 승복’으로 뜯어 고친 것은 박근혜 자신이었다. 그렇게 그는 패배를 시인하고 받아들인 정치인이 됐다.

미국 대통령 선거는 패배자가 당선자에게 전화를 걸어 축하하는 것으로 길고 긴 레이스를 마감한다. 지난달 대선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공화당 롬니 후보가 오바마에게 전화를 걸어 대통령 당선을 축하했다. 당선자가 확정된 1시간여가 지난 다음이었다. 잔인한 시간이었다. 언론들은 롬니의 반응 시간에 조바심을 쳤다. 마지못한 행동은 마뜩잖은 평가를 낳게 마련이다. 1시간은 롬니가 마음을 추스르는 데 걸린 긴 시간이었다. 국내정치 현장에서도 패배를 받아들인 사람을 찾기는 정말 어렵다. 손학규 후보는 패배가 두려웠기 때문에 아예 몸담았던 정당을 미리 박차고 나가버렸다. 기실 게임의 규칙이라는 명분 문제는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중산층 지식인이 가장 좋아한다는 손학규는 바로 그 패배를 직시하지 않았던 과오 때문에 결국 기나긴 고난의 가시밭길을 걸어야 했다.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은 사실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정규재 칼럼] 패배를 마주해야 할 때
지난주 우리는 또 한 명의 패배자를 봐야 했다. 단일화는 패배자가 없는 게임이었어야 했지만 결국 패배자를 만들고 말았다. 결코 좋은 모양새는 아니었다. 여론조사 방식의 단일화는 처음부터 어려운 과제였지만 담판을 하든 조사를 하든 단일화 축제는 결국 무산됐다. 특히 안철수 후보는 대통령 후보에 걸맞은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TV토론 이후 대중의 인기가 급락했다는 점이 그에게 패배의 공포를 불렀을 것이다. 문재인의 양보만이 좋은 단일화라는 식의 해석은 너무도 유아적인 안철수 생각이었다. 내 생각과 주장이 관철될 경우에만 소통이요 축제라고 부른다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가. 그것은 과도하게 자기중심적 태도지만 안철수는 그랬다.

안철수 후보는 사퇴 연설에서조차 단일화 룰에 대한 미련을 절절이 남기면서 마뜩잖은 후보사퇴의 억지 결론을 만들어 갔다. 아름다운 장면도 논리적인 흐름도 아니었다. 패배가 눈앞에 다가왔다고 해서 게임 자체를 삭제하거나 종료시켜 버리는 것은 용기 있는 자의 선택이 결코 아니다. 패배를 직시하는 것이야말로 지도자의 품성이며 덕목이다. 패배가 두려워 상대방에 대한 한마디의 사전 통보도 없이 일방적으로 게임을 끝내는 것은 대체 무슨 버릇인가. 그렇게 문재인은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더구나 TV토론에 대한 안철수 측의 비난은 어이가 없는 일이었다. 학예회가 아닌 다음에야 “네 그렇죠!”식의 문답을 시청자들에게 보여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한다면 왕자병이다. 사실 처음부터 그런 혼돈과 연막의 연속이었다. 대통령 후보로 출마할 것인지를 둘러싼 긴 혼선부터가 실은 지극히 자기중심적 선회였다. 누군가 꽃가마를 메고 찾아와주기를 바랐던 거다. 그 다음은 기성 정치인들과 다름없는 행보였다. 그리고 패배의 순간이 다가오자 일방적으로 하차해버린 것이다. 검증의 기회도 정책에 대한 비판의 기회도 주지 않았다. 어쩌면 대통령 선거전을 청춘콘서트처럼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정치는 언제나 비난받기 마련이다. 그러나 한 번씩은 진짜와 가짜를 매섭게 걸러낸다.

정규재 논설위원실장 jkj@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