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월 걸릴 듯…청구액은 2조4천억원 정도로 추산
FTA 확대 속 ISD 담당자는 1명뿐…"통상인력 육성 시급"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투자자-국가소송제(ISD)의 분쟁절차는 내달 초 시작된다.

정부는 총리실, 기획재정부, 외교통상부, 법무부, 금융위원회, 국세청 등 6개 부처 30여명으로 구성한 태스크포스(TF)를 중심으로 론스타의 법리 공세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언론 등 외부기관에서 관계자 발언이나 자료 등이 유출되면 소송에 악용될 우려가 크다고 보고 입단속에 들어갔다.

통상교섭본부 고위 관계자는 25일 "이번 소송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ISD 폐기논란' 속에서 우리나라 정부를 상대로 처음 제기된 ISD 소송이니만큼 판결 결과가 매우 중요하다"며 "총력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 분쟁절차 내달 초 시작
론스타가 미국 워싱턴의 국제중재기구(ICSID)에 투자자-국가소송제를 제기했지만 당장 소송이 시작되는 건 아니다.

ICSID 사무국은 론스타의 중재신청서를 분석해 당사자 적격 등 형식적 요건을 갖춰졌는지, ICSID가 해당 사건에 관할권을 갖는지 판단한다.

이 절차가 끝나면 사무국은 사건을 등록하게 되고 한국 정부에 중재신청서 사본을 전달한다.

이후 론스타와 우리나라 정부는 2~3주간 협상을 벌여 중재판정부(Tribunal) 구성에 합의해야 한다.

중재판정부는 3명으로 구성된다.

분쟁당사자가 한 명씩, 양측 합의로 나머지 1명을 지명한다.

양측 합의 실패로 중재 제기 후 75일 이내 중재판정부가 구성되지 않으면 ICSID 사무총장이 제3 국적의 중재인을 임명할 수 있다.

중재판정부가 어떻게 구성할 것인지는 판정에 중요한 요소다.

판정부 구성원의 정서ㆍ지역ㆍ언어 동질성이 판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법무부 관계자가 "변호사들과 상의해야겠지만 아무래도 한국 정서를 이해하고 국제법 지식이 해박하면서 영어가 능통한 후보가 가장 좋지 않겠느냐"고 말한 것은 이런 정서를 반영한 발언으로 보인다.

중재판정부에 들어갈 후보는 ICSID 협약에 따라 147개 회원국이 사전에 지명한 526명 가운데 뽑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신희택 서울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갑유 변호사 등 8명이 명단에 들어 있다.

소송당사국의 법조인은 이번 소송에서 제외돼 신 교수 등은 이번 중재에서 빠진다.

특정 중재인이 소송에 불리할 수 있다고 하면 일방은 배제를 요구할 수 있다.

중재판정부가 구성되면 '본항전 항변', '본안 심리'를 통해 양측의 치열한 법리 공방이 펼쳐진다.

◇중재판정의 핵심은 '합리성과 비례성'
ISD 분쟁 중재의 기준은 양국 간 협정문이다.

판정의 준거는 합리성과 비례성(비차별성)이다.

정부가 외국인 투자자가 운영하는 사업, 기업을 규제할 때 합목적성과 합리성을 띠어야 하고 내국산업, 기업과 차별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례로 멕시코 정부는 1970년대 고과당옥수수시럽(HFCS)을 개발해 멕시코 탄산음료시장을 장악한 미국의 카길사를 겨냥해 2001년 20%의 소비세를 부과했다.

자국업체들이 쓰는 설탕을 제외하고 감미료 사용 음료를 겨냥한 조치였다.

ICSID는 3년간 심리를 거쳐 멕시코 정부가 고의적인 표적화로 최소기준대우 의무와 이행요건 부과금지 조항을 위반했다고 판정했다.

멕시코 정부의 맥길사에 대한 조치가 비례성에서 어긋났다고 본 것이다.

이번 소송 역시 핵심은 한국 정부가 론스타에 취한 조치와 과세가 합리적이고 다른 기업과의 차별성이 없었냐는데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론스타는 앞서 3번에 걸쳐 한-벨기에 투자보호협정 위반을 한국정부에 경고했다.

2008년 7월, 2009년 2월, 올해 1월이었다.

2006년 KB금융지주, 2007년 싱가포르의 DBS은행, 2007년 HSBC은행에 각각 외환은행 지분을 팔려다가 매각 승인이 늦어져 지분 값이 내려가는 바람에 손해를 봤다는 거다.

론스타는 이 과정에서 금융위원회가 매수자가 아닌 매도자의 적격성을 따지는 바람에 매각이 좌절돼 규제의 합목적성과 합리성을 어겼고 차별적인 대우를 받았다는 주장을 펴는 것으로 알려졌다.

과세 문제도 국세청이 고정사업장 유무를 이유로 7년 동안 세금 평가방식을 멋대로 바꾸며 무리하게 세금을 떼 갔다는 견해를 보인다.

정부는 매각 승인 자체가 규제기관의 판단 문제이고 국민적 여론을 무시할 수 없는 사안인 만큼 소송의 대상이 될 수 없다고 반박한다.

매각 승인 지연도 사법기관의 판결, 산업자본 여부 판단 등에 따른 불가피한 결정이었다고 강조했다.

과세도 론스타가 벨기에 국적이기는 하나 실체가 없는 페이퍼컴퍼니에 불과하므로 소득이 발생한 국가에서의 과세가 정당하고 고정사업장 유무에 대한 판단을 한차례 했을 뿐 의견을 바꾼 적이 없다고 논박한다.

◇ 정부 ISD 전담은 1명뿐…"통상인력 육성 시급"
정부는 이번 국제중재가 30개월 정도 걸릴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까지의 중재사례를 보면 20개월 미만으로 끝난 것도 많지만 평균 3년 이상 끈 경우도 적지 않다.

론스타는 소송가액을 특정하지 않은 채 피해액을 수십억달러(billions of dollars)로 산정했다.

일각에서는 대략 2조4천억원 정도로 추산한다.

그러나 론스타가 승소하더라도 이 돈을 다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지금까지 국가를 상대로 ISD를 제기해 받아낸 손해배상액은 청구액(23억달러)의 1% 정도인 2천300만달러에 불과했다.

이 때문에 이번 소송이 오히려 법무법인의 배만 불릴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실제 정부도 소송을 길게 끌면 소송비용만도 1천만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우리나라 소송 대리인은 법무법인 태평양과 미국 `아널드 앤드 포터'이다.

론스타 측은 미국계 다국적 로펌 `시들리-오스틴'과 법무법인 세종인 것으로 알려졌다.

모두 이 분야에서는 내로라하는 법무법인이어서 시간당 자문료가 500~700달러 가량 된다.

소송과 함께 정부의 대응능력을 키우려는 노력도 시급하다.

이번에 문제가 된 한-벨기에 투자보장협정에는 페이퍼컴퍼니의 경우 협정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혜택의 부인(Denial of Bebefits)' 규정이 없다.

2006년 개정 당시에 이 규정을 담지 못했고 이후 론스타의 거듭된 경고에도 2011년 발효까지 수정하지 못했다.

정부의 대응전략이 미숙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FTA 확대정책에도 ISD 관련 담당자는 아직 정부에 1명밖에 없다.

정인교 인하대 경제학부 교수는 "ISD의 위험을 줄이고 적절히 대응하려면 포퓰리즘 규제를 없애는 노력과 함께 중재와 교섭차원에서 전문 통상인력을 육성하는 게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연합뉴스) 유경수 기자 yks@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