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민주통합당 대선 후보와 안철수 무소속 대선 후보 간 단일화 협상이 2002년 노무현-정몽준 후보가 단일화를 이뤘던 당시와 판박이가 됐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막판까지 양측이 여론조사 방식의 유불리를 놓고 협상에 난항을 겪은 것이나 남은 시한을 감안할 때 여론조사 이외의 다른 방식을 선택할 가능성이 사실상 사라졌다는 점도 똑같다. 10년이 지났음에도 양쪽 지지자들의 폭넓은 동의를 이끌어낼 만한 단일화 모델을 결국 찾지 못하고 여론조사에만 의존하게 되면서 한국 정치의 후진성만 재확인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2002년 민주당 대선 후보였던 노 후보는 11월8일부터 정 후보와의 단일화 협상을 시작했다. 당시 노 후보 측은 이해찬 의원, 정 후보 측은 이철 전 의원을 각각 협상단장으로 내세워 협상을 진행했으나 입장 차가 쉽게 좁혀지지 않았다.

그러자 정 후보가 노 후보에게 단독 회담을 제안했고 노 후보가 이를 수용해 15일 심야 회동이 이뤄졌다. 이 자리에서 두 후보는 소주로 ‘러브샷’까지 하면서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 등 8개항에 합의했다. 이후 실무 협상단은 단일화 방식(16일)과 세부 절차(17일) 등에도 의견을 모았다.

그러나 18일 한 언론사에 여론조사 방식이 보도되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양측 간 책임 공방이 벌어졌다. 급기야 협상 자체가 깨졌다. 정 후보 측 협상팀 전원이 사퇴해 단일화가 무산됐다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19일 저녁 노 후보 측 신계륜 비서실장과 정 후보 측 민창기 홍보위원장이 2시간30여분 동안 만나 단일화 합의가 유효하다는 것을 재확인했다. 양측은 20일 협상단을 새롭게 구성해 단일화 방안 조정을 위한 재협상에 돌입했다. 신 비서실장과 민 위원장이 2차 협상단장을 맡았다.

이들을 포함한 2차 협상팀은 20일 저녁부터 27시간 동안 마라톤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여론조사 문항에 ‘역선택’ 방지 조항을 넣을지를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해 협상이 또 깨질 위기에 몰렸다. 양측 협상은 22일 오전 노 후보가 ‘역선택’ 방지 조항을 수용하면서 타결됐다. 그날 저녁 양자 TV토론이 열렸고 일요일인 24일 여론조사 업체 두 곳의 조사를 거쳐 노 후보의 승리가 확정됐다.

김용호 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여론조사에 참여하는 유권자들은 아무런 정치적 책임을 느끼지 않는다”며 “아울러 오차범위 내 박빙의 결과가 나오게 되면 사실상 ‘동전 던지기’와 다를 게 없는 만큼 양쪽 지지자들이 제대로 승복할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