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실상 ‘환율 방어’에 돌입했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21일 ‘외환시장 규제 조치’를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구두개입 강도를 높였고 정부는 은행의 비(非)예금성 부채에 대한 부담금 등 환율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거시건전성 규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동안 ‘환율 수준은 문제삼지 않는다’던 정부가 최근 원·달러 환율이 가파르게 떨어지며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을 위협하자 대책 마련에 나선 것이다.

○“방아쇠 당기기 직전”

박 장관은 이날 위기관리대책회의에서 “최근 외환시장의 변동성 확대는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정부는 국내외 금융·외환시장 동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며 상황 전개에 따라 필요하다면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필요하다면’이라는 전제를 달기는 했지만 구체적으로 ‘조치’란 단어를 꺼냈다는 점에서 이미 환율 방어 태세를 마쳤다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이날 발언은 종전에 비해 수위가 한층 높아진 것이기도 하다. 박 장관은 지난달 25일 기자간담회 때만 해도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대책을) 검토 중”이라고 말했고 이달 11~12일에도 “여러 가지를 연구·개발(R&D)하는 단계”라고 했다. 환율 하락이 당장 ‘발등의 불’은 아니라는 분위기에서 상황 전개에 따라 당장 조치를 취해야할 만큼 심각하게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 은성수 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안전장치를 풀고 방아쇠에 손가락을 걸고 있는 상태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정부는 또 최근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등 수출 대기업 재무담당자와 간담회를 갖고 협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들이 환율 하락을 우려해 수출 대금으로 들어온 달러를 급하게 팔면 환율이 더 떨어져 결국 수출 업체도 손해가 된다고 강조한 것이다.

정부가 환율 방어에 적극 나서려는 이유는 최근 원·달러 환율이 수출 기업들이 채산성을 위협하는 1080원대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미국 일본 등 선진국의 ‘무제한 돈풀기’가 예고되면서 정부가 나서지 않으면 외환시장에 ‘환율 하락 대세론’이 확산되고 있다.

○환율 일단 상승

정부는 현재 ‘거시 건전성 3종 세트’ 가운데 은행의 선물환 포지션 한도와 외환건전성 부담금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외국은행 국내지점은 자기자본 대비 200%, 국내 은행은 자기자본 대비 40%까지 선물환 포지션을 가질 수 있다. 이를 각각 150%와 30%로 낮추는 방안이 거론된다. 선물환 포지션이 줄어들면 예컨대 은행이 선물 형태로 매도할 수 있는 달러가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환율 하락 속도를 늦출 수 있다.

은행의 비(非)예금성 외화부채에 매기는 외환건전성 부담금을 강화하는 것도 대안으로 거론된다. 부담금 부과 대상을 증권 보험 등 다른 금융업종으로 확대할 가능성도 있다.

외환시장은 정부의 달라진 태도에 눈치를 보는 분위기다.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전날보다 1원 오른 1083원20전에 거래를 마쳤다. 시중은행의 한 딜러는 “박 장관이 직접 개입 가능성을 언급한 만큼 원화 절상에 대한 공격적 베팅은 당분간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가 중장기적으로 원화 강세를 추세적으로 되돌리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 역시 많다.

주용석/이심기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