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앞으로 10년간 출신과 성장 배경, 성격과 성향, 업무 스타일, 정치 노선 심지어는 외모까지 전혀 다른 두 사람의 손에 국가의 명운을 맡기게 됐다. 시진핑(習近平) 국가 부주석과 리커창(李克强) 상무 부총리. 이들은 오는 8일부터 1주일 동안 열릴 18대 공산당 전국대표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재선되고 당 서열 1, 2위에 오를 것이 유력하다. 내년 3월에는 각각 국가 주석(최고 통치권자)과 국무원 총리(국무총리 격)를 맡아 국정을 이끈다. 국무원 총리는 한국과 달리 내각의 정책 집행은 물론 인사권까지 쥐고 있어 국가원수급 대우를 받는다.

두 사람은 10년 가까이 정치적 대결을 해온 라이벌이다. 그러나 이제 국정 운영의 공동 책임자가 되면서 직접 머리를 맞댈 일들이 많아졌다. 일부에서는 두 사람의 뚜렷한 차이가 새로운 갈등을 빚어내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적어도 후진타오(胡錦濤)-원자바오(溫家寶) 체제와 같은 밀월관계는 아니라는 게 대체적인 평가다. 시진핑이 태자당의 리더이고, 리커창은 공산당 최대 계파인 공산주의청년단 수장이라는 점에서 이들의 대립은 심각한 권력 투쟁으로 비화될 수도 있다.


○너무도 다른 두 사람

시진핑과 리커창은 그동안 최고지도자 자리를 놓고 불꽃 튀는 권력 투쟁을 벌여왔다. 그동안 기선을 잡은 쪽은 오히려 리커창이었다. 그는 정치적 스승인 후 주석의 전폭적인 지지를 등에 업고 승승장구했다. 38세에 최연소 공청단 중앙 제1서기가 됐고, 43세에는 허난(河南)성 성장(도지사)이 돼 최연소 성장 기록을 세웠다. 당시만 해도 차세대 자리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그러나 리커창은 허난성장 시절 에이즈 확산과 148명이 사망한 다핑(大平)탄광 매몰 사건 등으로 골머리를 앓았다. 랴오닝(遼寧)성 서기 재직 때는 광부 214명의 목숨을 앗아간 탄광 매몰 사건이 터졌다. 그는 “대응이 서투르고 실적이 부족하다”는 혹평을 들었다. 리커창을 ‘대재앙의 별’이라고 조롱하는 노래도 나왔다. 결국 2007년 17대 당대회에서 서열 6위로 부주석에 오른 시진핑에 밀려 7위인 상무 부총리 자리를 맡았다.

두 사람의 인생 역정도 매우 대조적이다. 시진핑은 널리 알려진 대로 혁명원로 시중쉰(習仲勳) 전 부총리(덩샤오핑·鄧小平 시절)의 아들이다. 그는 공산당 고관들이 사는 베이징 중난하이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고 고급 간부의 자제들이 다니는 베이징81학교에 입학하는 등 유복한 생활을 했다.

반면 리커창은 안후이성 시골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지역 공무원이었지만 권력과는 거리가 멀었다. 리커창은 시골에서 베이징대 법학과를 들어갈 정도로 수재였다. 이에 비해 시진핑은 부친과 친분이 있는 덩샤오핑 인사들이 교육계를 장악하면서 추천 학생 형식으로 칭화대에 들어갔다.

문화혁명으로 하향(下鄕·학생들을 농촌에 보내 강제노동을 시킨 조치)됐을 때도 두 사람은 달랐다. 시진핑은 촌민들과 어울려 지내기를 좋아했다. 그가 6년간의 하향을 마치고 베이징으로 돌아갈 때 눈물을 흘린 촌민들도 많았다. 반면 리커창은 자기 수련에 주력했다. 그는 1만권의 책을 가져와 틈만 나면 책을 읽었다. 그가 베이징대에 입학하기 위해 촌을 떠날 때 배웅을 나온 이가 한 명도 없었다고 한다.

시진핑은 칭화대 졸업 후 어머니의 소개로 겅뱌오(耿飇) 중앙군사위원회 비서장의 비서가 됐다. 겅뱌오가 좌천된 후에는 지방 근무를 자원해 허베이성으로 갔지만 곧 연안지역인 푸젠성 저장성 상하이 등을 돌았다. 리커창은 대학 졸업 후 16년간을 공청단에 머물다 1998년 허난성 대리성장으로 처음 지방 간부가 됐다. 그 후 랴오닝성에 있다가 중앙으로 왔다.

시진핑은 중후하고 온화하며 카리스마가 있다. 반면 리커창은 개방적이고 자수성가형 스타일이다. 시진핑이 성장을 추구한다면 리커창은 분배와 균형을 중시한다. 시진핑은 부친의 후광으로 폭넓은 인맥을 쌓았지만 리커창은 자신의 힘으로 공청단 좌장에 올라섰다. 두 사람은 공통점을 찾기 어렵다. 서로를 보완해가며 국가를 이끌어가기에 적합하다는 분석도 있지만 서로 등을 돌릴 경우 중국에 큰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수 vs 교수…부인들도 대조적

시진핑의 부인인 인민해방군 가수 펑리위안(彭麗媛)이 대중 앞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는 반면 리커창의 배우자인 청훙(程虹)은 직장 동료들과도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펑리위안은 2002년 인민해방군 소장으로 승진했으며 인민해방군 총정치국 가무단장을 맡고 있다. 중국 톱스타들이 총출동하는 인기 프로그램 CCTV(중국중앙방송) 신년콘서트에 1983년부터 2008년까지 빠짐없이 출연했다. 2008년 쓰촨(四川) 대지진 때 위험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기도 했다.

청훙은 베이징 수도경제무역대 영문학과 교수다. 그는 1995년 미국 브라운대 연구교수를 지냈다. 미국 자연주의 문학을 중국에 소개하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중국 최고위층 부인 중에 청훙만큼 영어와 영·미 문학에 능통한 인물은 없었다”며 “차기 지도부에서 미국과의 관계를 푸는 데 어떤 식으로든 남편에게 도움이 되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베이징=김태완 특파원/노경목 기자 tw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