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폐위기 남해화학, 430억 기름증발 미스터리
남해화학이 430억원어치 ‘기름증발’ 사건에 휘말려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대리점에 공급한 물량이 주유소에서 팔렸으나 돈은 들어오지 않았다. 은행의 가짜 지급보증서를 담보로 석유제품을 대리점에 넘긴 전 임원은 배임 및 배임수재 혐의로 구속됐다. 소액 주주들만 큰 피해를 입게 됐다.

상폐위기 남해화학, 430억 기름증발 미스터리
남해화학은 임원 조모씨가 430억원 규모의 업무상 배임 혐의를 받고 있다고 29일 공시했다. 430억원은 남해화학 자기자본의 11.7%(3671억7034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한국거래소는 이날 주식시장 개장 전 남해화학 주식의 매매거래를 정지하고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인지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 거래소 상장 규정에 따르면 자기자본의 5%가 넘는 금액의 횡령 또는 배임이 발생한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은 상장폐지 실질심사 검토 대상이 된다.

국내 1위 비료업체인 남해화학은 비료와 화학 외에 유류사업을 하고 있다. 배임 혐의는 국내외에서 휘발유와 경유, 등유 등을 들여와 대리점과 농협주유소 등에 공급하는 유류유통사업에서 불거졌다.

유류사업본부장이었던 조씨는 지난해 경인에너지 대표 정모씨가 가짜 지급보증서를 발급받은 것을 알고도 이를 담보로 430억원어치의 석유제품을 공급하고 2억6000만원을 챙긴 혐의다.

서울동부지검은 지난 26일 조씨를 구속 기소했고 경인에너지 대표 정모씨와 지모씨, 정상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임의로 지급보증서를 발급해준 혐의로 신한은행과 기업은행 지점장 2명도 구속 기소한 상태다. 정씨와 지씨는 가짜 지급보증서를 발급해주는 대가로 신한은행 지점장에게 10억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급보증은 거래 상대방에게 줘야 할 채무의 지급을 금융회사가 보증하는 대신 금융회사에 수수료를 내는 계약이다. 업계 관계자는 “수백억원대의 지급보증서가 가짜인지를 파악하지 못하는 등 내부 통제가 허술했던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대리점인 경인에너지를 통해 주유소로 넘어간 휘발유, 경유 물량의 40%가량이 이미 시중에 판매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해화학 관계자는 “공급한 석유제품을 되찾아오진 못하겠지만 전 임원의 배임 혐의와 별도로 피해액 회수 절차를 밟을 것”이라며 “경인에너지와 신한은행에 물품 대금 청구 소송을 하고 확보된 담보도 감정 평가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유류사업이 남해화학 전체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5% 정도다. 올 상반기 유류사업 매출은 2666억3300만원이었고 90억원이 넘는 영업적자를 냈다.

남해화학의 최대주주는 지분 56%를 보유하고 있는 농협경제지주다. 1974년 설립된 남해화학은 1995년 증시에 상장됐고 1998년 농협이 경영권을 확보했다. 지난해 말 기준 소액 주주의 지분율은 40.52%로 상장폐지가 현실화하면 소액주주의 피해가 클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남해화학 여수 본사와 서울 사무소엔 소액주주들의 문의 전화가 수백통이 왔고 직접 찾아와 항의하는 주주도 있었다.

거래소는 앞으로 15거래일 이내에 남해화학이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이 되는지를 결정해야 한다. 실질심사 대상으로 결론나면 그로부터 7거래일 이내에 상장폐지 여부가 결정된다. 실질심사가 필요없다는 결론이 나오면 남해화학의 매매거래는 즉시 재개된다.

윤정현/유승호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