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칼럼] 경제민주화 폐해 줄이는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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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 경제는 본질적으로 민주적
정치권서 왜곡해 현실화될 처지
잘못된 구호가 진실 덮어선 안돼
복거일 < 소설가·경제평론가 eunjo35@naver.com >
정치권서 왜곡해 현실화될 처지
잘못된 구호가 진실 덮어선 안돼
복거일 < 소설가·경제평론가 eunjo35@naver.com >
주요 대통령 후보들이 공약으로 내세우고 시민들의 반응이 호의적이므로, 경제민주화가 무엇을 뜻하든, 그것이 다음 정권에 의해 실천되리라는 것만은 확실하다. 참으로 걱정스럽다.
경제민주화의 폐해는 벌써 나오기 시작했으니, 대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큰 돈을 들이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후보들이 내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기업지배구조를 규제해서 재벌을 해체하거나 응집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므로, 대기업들은 경영권을 지키려고 자사주를 사들인다. 투자에 들어갈 돈이 훨씬 비생산적인 형태로 바뀌는 것이다.
참으로 씁쓸한 반어(irony)이다.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은 진정한 뜻에서의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효과를 지녔다. 이 반어는 지나치기 쉬우므로, 자세히 살필 만하다.
경제민주화는 경제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이다. 경제 민주주의는 19세기 말엽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공산주의 체제의 경제적 측면을 묘사하는 말로 처음 쓰였다. 그럴 듯하게 보이는 이 말은 음험한 덫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에서 쓰이는 말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들이 같은 권리를 지니고 사회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제도다. 자연히, 그것은 기회의 평등을 뜻한다. 결과의 평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투표를 통해 나온 정치적 구도는 특정 세력에 의한 권력의 장악이다.
시장경제에선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활동한다. 그렇게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므로,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민주적이다. 따로 민주화를 할 필요가 없다.
경제 분야에서 민주화라는 말이 아예 안 쓰이는 것은 아니다. 가난해서 보장된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은 흔히 민주화라 불린다. 은행의 문턱을 낮추어 가난한 사람들이 은행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은행의 민주화라 하고 증권 시장을 육성해서 서민들도 주식에 쉽게 투자하도록 하는 것은 증권 시장의 민주화라 한다. 자사주의 매입은 증권 시장을 위축시키므로, 서민들이 주식을 사는 것을 그만큼 어렵게 만든다. 즉 실질적 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반어가 있다.
따라서 시장경제엔 본질적으로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불행하게도, 그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호가 됐고, 이제 그것이 쓰이지 않도록 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제민주화의 뜻을 시민들이 잘 알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그 말이 가난한 사람들도 기회를 실제로 누리도록 하는 일을 뜻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엔, 경제민주화를 재벌 지배구조의 규제로 만들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 기업지배구조는 민주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어떤 창업자든 자신이 기업을 계속 지배하리라는 기대 속에 기업을 세우고 발전시킨다. 좌파를 대변하는 ‘뉴욕 타임스’의 사주 일가가 불평등 주식들을 통해 경영권을 유지했고 그런 위선적 행태를 좌파 지식인들이 지지했다는 사실은 여러 모로 시사적이다.
셋째, 재벌들의 지배구조를 직접 규제하려는 시도는 이론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 재벌에 적대적인 사람들이 하도 순환출자를 공격해서, 이제는 그것이 나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런 공격은 이론적 바탕이 없다.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계속 진화하므로, 선험적(先驗的)으로 무엇이 특정 시장이나 기업의 최적 지배구조인지 알 길은 없다. 시장에서 번창한 기업들을 살핀 뒤에야, 그 시장에서 적절한 지배구조가 드러난다. 순환출자는 시장의 검증을 거친 기업지배구조다.
넷째, 경제민주화의 폐해가 벌써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가리키듯, 무슨 내용이 거기 담겨도, 경제민주화는 혜택은 거의 없고 폐해만 클 것이다. 우리 경제가 허약해지리라는 걱정이 크다. 이 점은 알리기가 비교적 쉬울 터다.
구호의 힘은 막강하다. 그리고 전체주의자들은 사람의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구호를 잘 만들어낸다. ‘경제민주화’와 같은 구호에 맞서 진실을 얘기하는 일은 힘들고 보답도 작다. 그러나 구호가 진실을 오래 억누를 수 있다면, 지금 세상은 히틀러나 스탈린의 추종자들이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복거일 < 소설가·경제평론가 eunjo35@naver.com >
경제민주화의 폐해는 벌써 나오기 시작했으니, 대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에 큰 돈을 들이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후보들이 내건 경제민주화의 핵심이 기업지배구조를 규제해서 재벌을 해체하거나 응집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므로, 대기업들은 경영권을 지키려고 자사주를 사들인다. 투자에 들어갈 돈이 훨씬 비생산적인 형태로 바뀌는 것이다.
참으로 씁쓸한 반어(irony)이다.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은 진정한 뜻에서의 경제민주화에 역행하는 효과를 지녔다. 이 반어는 지나치기 쉬우므로, 자세히 살필 만하다.
경제민주화는 경제 민주주의를 이루는 것이다. 경제 민주주의는 19세기 말엽 마르크스주의자들이 공산주의 체제의 경제적 측면을 묘사하는 말로 처음 쓰였다. 그럴 듯하게 보이는 이 말은 음험한 덫이다.
민주주의는 정치에서 쓰이는 말이다. 민주주의는 모든 구성원들이 같은 권리를 지니고 사회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제도다. 자연히, 그것은 기회의 평등을 뜻한다. 결과의 평등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자유로운 투표를 통해 나온 정치적 구도는 특정 세력에 의한 권력의 장악이다.
시장경제에선 모든 시민이 자유롭게 활동한다. 그렇게 기회의 평등이 보장되므로, 시장경제는 본질적으로 민주적이다. 따로 민주화를 할 필요가 없다.
경제 분야에서 민주화라는 말이 아예 안 쓰이는 것은 아니다. 가난해서 보장된 기회를 누리지 못하는 사람들도 실제로 기회를 누릴 수 있도록 하는 일은 흔히 민주화라 불린다. 은행의 문턱을 낮추어 가난한 사람들이 은행을 이용하도록 하는 것은 은행의 민주화라 하고 증권 시장을 육성해서 서민들도 주식에 쉽게 투자하도록 하는 것은 증권 시장의 민주화라 한다. 자사주의 매입은 증권 시장을 위축시키므로, 서민들이 주식을 사는 것을 그만큼 어렵게 만든다. 즉 실질적 민주화에 역행하는 것이다. 여기에 반어가 있다.
따라서 시장경제엔 본질적으로 경제민주화라는 말이 들어설 자리가 없다. 불행하게도, 그 말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구호가 됐고, 이제 그것이 쓰이지 않도록 할 수는 없다.
지금 우리가 먼저 해야 할 일은 경제민주화의 뜻을 시민들이 잘 알도록 하는 것이다. 특히, 그 말이 가난한 사람들도 기회를 실제로 누리도록 하는 일을 뜻하도록 해야 한다.
다음엔, 경제민주화를 재벌 지배구조의 규제로 만들려는 시도를 막아야 한다. 기업지배구조는 민주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어떤 창업자든 자신이 기업을 계속 지배하리라는 기대 속에 기업을 세우고 발전시킨다. 좌파를 대변하는 ‘뉴욕 타임스’의 사주 일가가 불평등 주식들을 통해 경영권을 유지했고 그런 위선적 행태를 좌파 지식인들이 지지했다는 사실은 여러 모로 시사적이다.
셋째, 재벌들의 지배구조를 직접 규제하려는 시도는 이론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져야 한다. 재벌에 적대적인 사람들이 하도 순환출자를 공격해서, 이제는 그것이 나쁘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그런 공격은 이론적 바탕이 없다. 기업들의 지배구조는 계속 진화하므로, 선험적(先驗的)으로 무엇이 특정 시장이나 기업의 최적 지배구조인지 알 길은 없다. 시장에서 번창한 기업들을 살핀 뒤에야, 그 시장에서 적절한 지배구조가 드러난다. 순환출자는 시장의 검증을 거친 기업지배구조다.
넷째, 경제민주화의 폐해가 벌써 나오기 시작했다는 사실이 가리키듯, 무슨 내용이 거기 담겨도, 경제민주화는 혜택은 거의 없고 폐해만 클 것이다. 우리 경제가 허약해지리라는 걱정이 크다. 이 점은 알리기가 비교적 쉬울 터다.
구호의 힘은 막강하다. 그리고 전체주의자들은 사람의 가슴 속으로 파고드는 구호를 잘 만들어낸다. ‘경제민주화’와 같은 구호에 맞서 진실을 얘기하는 일은 힘들고 보답도 작다. 그러나 구호가 진실을 오래 억누를 수 있다면, 지금 세상은 히틀러나 스탈린의 추종자들이 지배하고 있을 것이다.
복거일 < 소설가·경제평론가 eunjo35@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