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신용평가기관인 스탠더드 앤드 푸어스(S&P)가 11일(이하 한국시간) 스페인의 국가 신용등급을 2단계나 낮추면서 유럽 재정위기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경기 침체 심화와 금융부문 위험 지속을 이유로 스페인의 신용등급을 투기 등급 바로 위 수준인 BBB-로 내리면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7개국)에 또 한 번 경고등이 켜졌다.

하지만 이번 신용등급 강등이 스페인 정부의 구제금융 신청을 압박하기 위한 것으로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가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 유로존 위기 스페인 문제로 재발


유로존 재정 위기는 지난달 유럽중앙은행(ECB)의 무제한 국채매입 결정과 이달 8일 유로존 상설 구제금융기관인 유로안정화기구(ESM) 출범으로 한고비를 넘기는 듯싶었다.

이 조치로 당분간 재정위기에 처한 국가의 디폴트(채무불이행) 위험과 유로존 해체 우려는 줄어들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페인이 간섭을 받아야 한다는 거부감 때문에 구제금융 신청을 주저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위기가 재연됐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가 `위기국이 먼저 구제를 신청해야 ECB도 해당국 국채를 사겠다'고 조건을 달았기 때문이다.

스페인으로서는 전면 구제금융 신청에 따른 부담감이 컸다.

스페인 정부는 구제금융에 뒤따라올 재정 긴축 등 혹독한 자구 노력과 국제금융시장에서 신인도 추락을 어떻게든 피하고 싶었던 것이다.

스페인은 `전면적인 구제금융까지는 필요 없다'는 입장을 유지했으나 최근 국제통화기금(IMF)과 S&P의 잇따른 부정적 전망 발표에 코너에 몰리게 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은 9일 스페인이 올해와 내년 재정감축 목표 달성에 실패할 것이라고 언급하면서 경제성장률도 올해(-1.5%)와 내년(-1.3%) 모두 마이너스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S&P도 이날 스페인의 금융 부문 위험성을 지적하며 신용등급을 낮췄을 뿐 아니라 신용등급 전망을 '부정적'으로 제시해 추가 강등의 여지를 남겼다.

◇ "스페인 구제금융 신청 여부가 관건"

신용등급 강등 때문에 ECB의 국채매입 결정과 스페인 정부의 경제 개혁안 발표 이후 낮아진 스페인의 조달금리가 상승할 것으로 보인다.

스페인의 10년물 국채 금리는 지난달 28일 이후 줄곧 6%를 밑돌고 있으나 상승이 불가피해 보인다.

10일 현재 전날보다 0.11%포인트 오른 5.82%를 기록했다.

스페인 신용 등급 강등 영향은 환율에도 영향을 미쳤다.

유로화의 달러화에 대한 환율은 이날 오전 11시30분 현재 전날보다 0.21% 하락한 1.2848달러까지 떨어졌다.

이 때문에 국제 금융시장에서는 스페인 중앙정부가 전면 구제금융을 요청하는 것을 시간 문제로 보고 있다.

스페인 정부가 오는 21일 지방선거를 의식해 구제금융 요청을 미뤄왔지만 신용등급 강등에다가 18∼19일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있어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을 수 없을 거란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또 유럽 5위 경제 대국인 스페인 경제가 무너지면 그리스, 이탈리아로 위기가 전이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그냥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이번 신용등급 강등은 이미 예정된 조치라서 큰 파장이 없으며 오히려 이 때문에 스페인의 구제금융 신청 가능성이 커졌다는 분석도 나왔다.

현대증권 이상재 연구원은 "S&P의 신용등급 강등은 이미 스페인 신용등급을 강등한 무디스와 눈높이를 맞춘다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연구원은 "이번 강등은 스페인 정부의 구제금융신청을 압박하는 측면이 있다"면서 "스페인이 구제금융을 신청한 이후 국채금리가 안정될 것인지 앞으로 더 주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LIG투자증권 김유겸 연구원도 "스페인이 21일 지방선거 전에 어떤 조치든 취할 것인데 결국 구제금융으로 가지 않겠느냐"면서 "전면 구제금융을 신청하면 시장이 조금 더 안정되면서 유럽위기가 진정되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연합뉴스) 박성진 박초롱 기자 sungjinpark@yna.co.krchopark@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