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의 균형이 기울기 시작했다.”

영국 더타임스는 4일 발표한 2012~2013 세계 대학 랭킹의 의미를 이렇게 요약했다. 미국은 세계 200위권 대학에 76개가 포함돼 1위를 지키긴 했지만 이 가운데 51곳이 작년보다 순위가 떨어졌다. 영국이 31개 대학으로 미국의 뒤를 이었지만 각 대학들의 랭킹은 평균 6.7계단 내려갔다.

반면 한국, 싱가포르, 대만, 중국 등 4개 아시아 국가 소속 대학들의 랭킹 상승폭은 평균 12계단에 달했다. 특히 한국은 포스텍(포항공대), 서울대, KAIST, 연세대 등 200위권 내 대학들의 랭킹이 평균 36.5계단이나 뛰었다. 대만국립대(134위)도 20계단 올랐다. 더타임스는 “미국과 영국 대학들은 세계적인 경기 침체로 중앙과 지방 정부의 지원이 위축된 반면 아시아 정부들은 여전히 교육에 많이 투자한 것이 순위 변화에 큰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했다.

○연구 역량 강화가 핵심

더타임스는 2010년부터 세계 대학 평가를 하고 있다. 2009년까지는 직업·교육평가 전문기관 QS와 함께 순위를 매겼다. 2009년 국내 대학들은 서울대 47위, KAIST 69위, 포스텍 134위, 연세대 151위 등 포스텍을 빼면 전반적으로 올해보다 좋은 성적이었다.

2010년 랭킹에서 지각 변동이 일어났다. 포스텍이 28위로 급상승한 반면 서울대(109위) KAIST(79위) 연세대(190위) 등은 모두 추락했다. 2009년까지 40%를 차지했던 평판도 배점이 30%로 내려간 반면 논문 재인용 지표의 비중은 20%에서 30%로 확대된 것이 큰 원인이었다. 게다가 연구비 수주, 논문 게재 수 등 연구 부문 지표 비중이 30% 새롭게 책정됐다. 대학의 평판보다 실제 연구 역량의 중요도가 대폭 높아진 것이다.

순위 추락을 경험한 국내 대학들은 지난해부터 연구역량 강화에 힘을 기울였다. 교수 1인당 연간 연구비 지원이 8억원에 육박하는 포스텍은 논문 재인용 지표에서 88.2점을 기록, 이번에 아시아 대학 중 1위를 차지했다. 아시아 2위인 도쿄대(71.3), 3위 싱가포르국립대(67.2)를 크게 앞선다.

서울대는 논문 재인용에선 48점으로 부진했지만 연구 81.4점, 교육 76.7점 등에서 국내 1위를 기록하며 전체 순위를 끌어올렸다. KAIST(68위), 연세대(183위), 성균관대(211위), 고려대(240위) 등도 전년보다 대폭 나아진 성적을 냈다.

이날 함께 발표된 ‘부문별 우수대학 50’에선 한국 대학들이 공학·기술 분야에만 이름을 올렸다. 포스텍(24위), 서울대(36위), KAIST(44위) 등이다. 그러나 예술·인문학, 의학, 생명과학, 물리학, 사회과학 등 다른 부문에서는 한국 대학들이 순위권에 진입하지 못했다.

○‘소규모 특성화’ 칼텍 2년 연속 1위

전체 순위에선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칼텍)가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이 대학은 학부생 900명, 석·박사 과정 1200명으로 이공계와 사회과학에 특화된 소규모 대학이다. 장 루 샤모 칼텍 총장은 “소규모 그룹 활동을 활성화해 1학년 때부터 강의보다는 실험 등 연구를 하도록 하는 환경이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반면 세계 최고 명문으로 꼽혀온 하버드대는 이 평가에서 2위에서 4위로 추락했다. 경기 침체로 해외 유학생 유치가 부진했던 것이 원인으로 지적됐다. 아시아에선 도쿄대(27위) 싱가포르국립대(29위) 홍콩대(35위) 베이징대(46위) 칭화대(52위) 교토대(54위) 등이 상위권에 올랐다.

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