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715억원 사윗감 공모
2007년 6월 1000억원대 부동산 부자가 한 결혼정보회사에 사위 공개 모집을 의뢰했다. 딸은 당시 37세로 나이는 좀 들었지만 키 158㎝에 재산 20억원, 연봉 6000만원이라는 사실까지 공개했다. 조건은 꽤 까다로웠다. 차남에 막내로 전문직업이 있어야 하며 단정한 외모, 같은 종교, 딸에 준하는 학벌(대학원), 돈과 자존심을 따지지 말 것 등이 제시됐다. 닷새 만에 의사 변호사 벤처기업 부사장 등 270여명의 후보가 몰렸다.

예상 밖의 반향을 일으키자 사위를 구해달라는 재력가들의 주문 60여건이 추가로 밀려들었다. 믿음직한 전문직 종사자를 원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세부 조건은 서로 달랐다. 재산 50억원대의 금융회사 지점장은 결혼 뒤 자녀의 성(姓)을 딸의 성으로 할 것을 요구했고, 자수성가형 300억원대 자산가는 재산관리 능력을 최우선으로 꼽았다. 작년엔 중국의 한 사업가가 사업을 물려주는 건 물론 100만위안(1억7600만원)짜리 승용차를 사주고 사돈 집에 100만위안을 보상하는 조건으로 사윗감 구하기에 나섰다. 왜 공모하느냐고 묻자 “집안 사정을 잘 아는 딸 주위의 남자들이 돈 보고 접근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고 밝혔다.

이번엔 자오스쩡(趙世曾)이란 홍콩의 부동산 재벌이 5억 홍콩달러(약 715억원)를 내걸고 33세 외동딸 자오스즈(趙式芝)의 사윗감을 찾고 있다. 부자든 가난하든 상관없지만 관대하고 친절한 사람이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소식이 알려지자 한국은 물론 예루살렘, 에티오피아, 이스탄불 등 세계 각국에서 자오스즈의 페이스북에 “당신을 만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는 문의가 빗발치고 있단다. 재미있는 건 아버지는 “1만여명의 여성과 잠자리를 함께했다”고 자랑할 정도의 바람둥이고, 딸은 레즈비언으로 얼마 전 동성(同性) 연인과 결혼했다는 점이다. 딸은 “재미 있다”면서 “일단 아버지 의견을 존중하고 싶다”는 입장이라고 한다.

‘처가와 변소는 멀수록 좋다’는 속담이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은 처가 신세지는 걸 개의치 않는다. 우리나라만 해도 1990년 1만8088명이었던 처가살이 남성이 2010년 5만3675명으로 세 배나 늘었다. ‘처가살이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남자대학생 64%가 ‘그렇다’고 대답했다는 조사도 있다. 가부장적 가족제도가 해체되고 맞벌이 부부가 늘면서 처가에 의존해도 상관없다는 쪽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는 것이다.

하긴 고구려 때부터 조선 중기까지 데릴사위나 처가살이가 보편화된 풍습이었다니 이상할 것도 없다. 다만 자오스쩡의 경우 워낙 거액을 걸고 공모하다보니 응모자들이 배우자는 뒷전이고 다른 노림수가 있다는 ‘혐의’를 피하긴 어려울 것 같다.

이정환 논설위원 jh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