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금융상품 충분히 설명못한 증권사에 책임"

3년 전 추석연휴를 하루 앞두고 주부 A(55)씨는 서울 강남의 한 대형증권사 PB센터를 찾았다.

남편이 안정적인 금융상품을 찾아보라며 묵직한 여윳돈을 건네줬기 때문이다.

A씨 남편도 한 증권사 임원을 지낸 금융인이어서 A씨는 남편이 일러준 대로 계좌를 개설하고 자산유동화 기업어음(ABCP)에 투자하는 상품을 골라 5억원 가량을 투자했다.

추석에 즈음한 목돈투자는 대체로 성공했다.

A씨는 이후에도 남편을 대신해 만기가 짧으면 한 달, 길면 넉 달쯤 되는 기업어음 투자상품에 돈을 넣었다 뺐다 하면서 수익을 냈다.

2010년 5월께는 투자금이 10억원 가까이 불었다.

하지만 계좌를 새로 만든 지 1년이 지난 2010년 10월 초 추석연휴 직후 A씨는 두고두고 후회할 선택을 하고 만다.

LIG건설이 발행한 기업어음에 돈을 넣은 것이다.

꽤 공격적인 만기 6개월짜리 신탁상품이었다.

A씨의 거금 2억8천여만원이 들어간 어음이 곧 휴짓조각으로 전락할 위기에 처했다.

LIG건설이 이듬해 3월 법원에 회생절차(법정관리) 개시를 신청했기 때문이다.

회사 측이 회생계획안을 인가받았으나 회수할 수 있는 채권액은 탐탁지 않았다.

A씨의 남편은 A씨에게 투자위험을 충분히 설명하지 않아 큰 손해가 발생했다며 증권사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1부(최승록 부장판사)는 A씨 남편이 W증권사와 증권사 창구직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에게 3천900여만원을 지급하라"며 원고 일부승소 판결했다고 28일 밝혔다.

재판부는 "증권사가 A씨와 상품계약을 체결할 때 LIG건설의 기업어음 투자로 인한 손실 위험 가능성에 관해 증권사와 비슷한 수준으로 인식할 수 있을 정도까지 설명했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재판부는 다만 A씨가 큰 손실을 보기 전에 1년 동안 지속적으로 거액을 투자해온 점, 증권사도 A씨에게 여러 상품의 수익률과 신용등급을 비교해 알려준 점 등을 감안해 배상 책임을 손해액의 20%로 제한했다.

한 증권사 직원은 "명절을 맞아 생긴 목돈을 어디에 투자할지 망설이는 고객이 많다"며 "여윳돈이라 공격적인 투자를 원한다면 상품이 얼마나 위험한지 잘 알아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울연합뉴스) 한지훈 기자 hanjh@yna.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