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등단하기 1년 전인 1996년 평론가로 먼저 이름을 알린 권혁웅 시인(45)은 2001년 첫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를 펴내며 ‘이제야 세상과 사람과 언어를 처음부터 다시 배울 준비가 되었다’고 적었다. 그로부터 11년 후인 지난 19일, 그는 시 ‘봄밤’으로 제12회 미당(未堂)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그는 “시인으로서의 ‘시즌 2’가 시작된 기분”이라고 소감을 밝혔다. 문단에서는 ‘평론가 권혁웅’이던 그가 시인으로서 다시 출발할 동력을 얻은 셈이다.

비평과 시작(詩作)을 겸업하던 그는 주로 비평가로 알려졌다. 그는 “시인 등단 후 15년간 주요 문예지에서 시 청탁을 해온 게 열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평론가 권혁웅’은 2000년대 중반 문단의 가장 큰 논쟁이었던 ‘미래파’ 논란의 중심에 서 있었다. 당시 타인과의 소통보다는 개인적 고통을 쏟아내는 데 치중한 듯한 긴 시들이 쏟아졌는데, 이 시들은 ‘시의 품격과 미를 파괴하는 기괴한 개인 방언’이란 비판을 받았다. 그러나 그가 이 시들을 ‘미래파’라 명명하며 “문법이나 코드가 다른 것뿐”이라고 옹호하고 나섰다. 그는 “아직도 ‘각각의 시는 독립국’이라는 입장에는 변함이 없다”면서도 “제가 문단을 진영논리로 편 가름한 것처럼 인식돼 상처도 많이 받았다”고 회상했다.

정작 그의 시는 전통적 서정시에 가깝다. 정치 풍자를 담은 시집 《소문들》을 제외하면 첫 시집 《황금나무 아래서》, 유년의 개인적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마징가 계보학》, 연애시집 《그 얼굴에 입술을 대다》 등이 모두 ‘과거파’다. 최근에는 ‘중년의 글쓰기’를 하고 있다. 청년은 열정, 노년은 회상의 글을 쓴다면 중년은 청춘은 갔지만 모든 게 사그라지지는 않은 시기여서 회상과 전망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상작인 ‘봄밤’도 이런 계통에서 나왔다. 꽃잎 떨어지는 봄밤, 천변 벤치에 누워 자는 취객을 보고 썼다. ‘현세와 통하는 스위치를 화끈하게 내려버린’ 시 속 샐러리맨은 사실 시인의 경험이 투영된 대상이다. 매일 취했던 대학 시절, 버스가 끊기면 벤치에 누워 자고 가던 그의 기억이 현재의 샐러리맨과 겹쳤다.

그는 청춘의 기억과 함께 어머니를 시의 내적 동력으로 꼽는다. “밖에 있다가 들어오는 분이었던 아버지는 세상의 불합리를 최초로 대면하게 만든 존재였어요. 반면 고향에 계시는 어머니를 생각하면 한없이 쓸쓸해지면서도 한편으론 편안한 느낌이 들죠. 이건 개인적 느낌이기도 하지만 우리의 일반적 체험이기도 한 것 아닐까요.”

평론가 권혁웅으로서 시인 권혁웅을 평가해달라는 질문에는 “자기는 객관화할 수 없지 않느냐”면서도 “슬픔과 유머가 같이 가는 시를 쓰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잘못하면 어중간한 시밖에 안되지만 균형을 이룬다면 웃다가 울고 울다가 웃는 경지에 이를 수도 있지 않느냐는 얘기다.

그는 시의 미래가 밝다고 믿는다.

“시는 사회에 언어를 흘려주는 샘물 아닐까요. 우리 사회에 상처와 아픔이 있는 한 근본적으로 시가 있을 겁니다.”

박한신 기자 hanshi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