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데스크] 응답하라, 70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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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
30여년 전 이맘 때였던 것 같다. 대학 캠퍼스를 지날 때 누군가 이름을 불렀다. 돌아보니 고향 선배였다. 반가운 마음에 달려가다가 얼핏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저 선배가 왜 여기에 있지?’ 선배를 만나자 의문은 풀렸다. 지방대에 다니던 선배는 ‘군 복무중’이었다. 복무지는 서울에 있는 대학. 복장도, 머리모양도 학생들과 똑 같았다. 대학에 상주하던 이른바 사복경찰이었다.
그런 시절이 있었다. 또래의 전경들이 대학생인 것처럼 캠퍼스에서 생활했다. 학생 2~3명만 모여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눈알을 부라렸다. 이런 모습을 보며 학생들은 저절로 의식화가 됐다. 화두도 자연스럽게 ‘독재 타도, 민주 쟁취’에 모아졌다. 용기있는 학생들은 거리에 나가 ‘독재 타도’를 외쳤다. 용기없는 학생들은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불렀다.
의미 변해버린 경제민주화
드디어 민주화가 됐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사독재정권은 백기를 들었다. 군사독재 청산작업은 그해 10월 확정된 9차 헌법개정안에 모아졌다. 독재방지에 치중하다보니 대통령 임기(5년 단임)도 기형적으로 정해졌다. 경제에도 ‘민주화’라는 조항이 삽입됐다. 25년이 지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헌법 119조 2항이 그것이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둥근 네모만큼이나 맞지 않는 조어”라는 주장(조동근 명지대 교수)도 있지만, 어쨌든 경제민주화는 대선을 앞둔 지금 시대적 화두가 돼 버렸다. 그렇다면 경제 민주화는 무엇일까. 민주화를 논하려면 ‘독재 타도’와 같은 뭔가 대척점이 있어야 한다. 당시 경제민주화를 주창한 사람들이 염두에 둔 주요 타깃은 정부와 사용자였다고 한다. 정부에는 관치경제 타파와 금융자율화를, 사용자에게는 노동자 권익보호를 염두에 두라는 주문이 강했다. 정경유착 이미지가 강한 대기업들도 타깃이었지만, 중심은 아니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경제민주화는 ‘재벌 개혁’과 동의어가 됐다. 일감 몰아주기와 납품가 후려치기, 골목상권 침입 등을 문제삼더니만 순환출자금지와 금산분리까지 나아갔다. “재벌의 탐욕을 막아 자본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것”(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특별위원장)이라거나, “재벌 개혁뿐 아니라 대·중소기업 상생, 소액 주주 권리, 소비자 보호를 위한 반(反) 독과점 정책 등을 포괄하는 개념”(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라고는 하지만 재벌을 손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숨길 순 없다.
'민주화' 를 남용하지 말라
물론 ‘재벌’로 통칭되는 대기업도 반성할 대목이 많다. 동네빵집으로 대표되는 문어발식 확장, 상속을 둘러싼 잡음, 국제학교 입학을 위한 국적 세탁 등 힘에 취해 자기관리를 충실히 하지 못한 책임이 상당하다. 그러다보니 미국 동네법정에서 나홀로 싸우며 무수한 일자리를 만들어 온 공로는 평가절하되고 만다. 자식들은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하길 바라면서도 겉으로는 그 대기업의 탐욕을 탓하는 기득권층의 이중성도 이래서 만들어졌다.
좋다. 정치철학에 따라선 대기업을 손보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라는 그럴 듯한 슬로건을 앞세우는 건 비겁하다. 차라리 통합진보당이나 민주당 일부처럼 재벌을 해체해 부(富)를 공평분배하겠다고 나서는 게 떳떳하다. 그렇지 않고 상당수 유권자들에게 아스라한 떨림으로 남아 있는 민주화라는 단어를 꺼내드는 것은 표를 얻기 위한 선거공작으로밖에 볼 수 없다.
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
그런 시절이 있었다. 또래의 전경들이 대학생인 것처럼 캠퍼스에서 생활했다. 학생 2~3명만 모여도 득달같이 달려들어 눈알을 부라렸다. 이런 모습을 보며 학생들은 저절로 의식화가 됐다. 화두도 자연스럽게 ‘독재 타도, 민주 쟁취’에 모아졌다. 용기있는 학생들은 거리에 나가 ‘독재 타도’를 외쳤다. 용기없는 학생들은 막걸리잔을 기울이며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민주주의여 만세’를 불렀다.
의미 변해버린 경제민주화
드디어 민주화가 됐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군사독재정권은 백기를 들었다. 군사독재 청산작업은 그해 10월 확정된 9차 헌법개정안에 모아졌다. 독재방지에 치중하다보니 대통령 임기(5년 단임)도 기형적으로 정해졌다. 경제에도 ‘민주화’라는 조항이 삽입됐다. 25년이 지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헌법 119조 2항이 그것이다.
“경제민주화라는 용어는 둥근 네모만큼이나 맞지 않는 조어”라는 주장(조동근 명지대 교수)도 있지만, 어쨌든 경제민주화는 대선을 앞둔 지금 시대적 화두가 돼 버렸다. 그렇다면 경제 민주화는 무엇일까. 민주화를 논하려면 ‘독재 타도’와 같은 뭔가 대척점이 있어야 한다. 당시 경제민주화를 주창한 사람들이 염두에 둔 주요 타깃은 정부와 사용자였다고 한다. 정부에는 관치경제 타파와 금융자율화를, 사용자에게는 노동자 권익보호를 염두에 두라는 주문이 강했다. 정경유착 이미지가 강한 대기업들도 타깃이었지만, 중심은 아니었다.
지금은 달라졌다. 경제민주화는 ‘재벌 개혁’과 동의어가 됐다. 일감 몰아주기와 납품가 후려치기, 골목상권 침입 등을 문제삼더니만 순환출자금지와 금산분리까지 나아갔다. “재벌의 탐욕을 막아 자본주의를 보호하기 위한 것”(김종인 새누리당 국민행복특별위원장)이라거나, “재벌 개혁뿐 아니라 대·중소기업 상생, 소액 주주 권리, 소비자 보호를 위한 반(反) 독과점 정책 등을 포괄하는 개념”(강석훈 새누리당 의원)이라고는 하지만 재벌을 손보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음을 숨길 순 없다.
'민주화' 를 남용하지 말라
물론 ‘재벌’로 통칭되는 대기업도 반성할 대목이 많다. 동네빵집으로 대표되는 문어발식 확장, 상속을 둘러싼 잡음, 국제학교 입학을 위한 국적 세탁 등 힘에 취해 자기관리를 충실히 하지 못한 책임이 상당하다. 그러다보니 미국 동네법정에서 나홀로 싸우며 무수한 일자리를 만들어 온 공로는 평가절하되고 만다. 자식들은 대기업 계열사에 입사하길 바라면서도 겉으로는 그 대기업의 탐욕을 탓하는 기득권층의 이중성도 이래서 만들어졌다.
좋다. 정치철학에 따라선 대기업을 손보는 게 시급하다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경제민주화라는 그럴 듯한 슬로건을 앞세우는 건 비겁하다. 차라리 통합진보당이나 민주당 일부처럼 재벌을 해체해 부(富)를 공평분배하겠다고 나서는 게 떳떳하다. 그렇지 않고 상당수 유권자들에게 아스라한 떨림으로 남아 있는 민주화라는 단어를 꺼내드는 것은 표를 얻기 위한 선거공작으로밖에 볼 수 없다.
하영춘 증권부장 hayou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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