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수서동 A아파트 전용면적 72㎡에 세들어 사는 최모씨(32)는 내달 만기가 돌아오는 전세 재계약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집주인이 전세보증금을 5000만원 올린 3억3000만원을 요구했지만 이미 집을 담보로 받은 금융권 대출금이 2억원이나 되기 때문이다. 2년 전 6억원을 웃돌던 집값이 5억5000만원까지 떨어져 융자와 전세보증금을 합하면 매매가격과 2000만원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 만약 집값이 추가로 내리고 집주인이 빚을 갚지 못해 아파트가 경매로 넘어가면 전세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최근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아파트값이 크게 내리면서 담보대출이 많은 주택의 세입자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경매에 들어가는 주택은 늘어나는데 낙찰금액이 떨어지면서 전세보증금을 날릴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우선 대출금이 많은 전셋집은 주의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전세계약 전 등기부등본을 확인해 은행 등 금융회사가 집을 담보로 돈을 빌려줄 때 설정한 근저당 금액이 집값의 20% 이상이면 피하라는 것이다. 함영진 부동산써브 연구실장은 “최근 경매시장에서의 주택 낙찰가는 시세의 70% 안팎인 경우가 많아 집값의 20% 이상 근저당이 설정돼 있으면 일반적으로 집값의 절반 정도인 전세보증금을 모두 돌려받지 못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대출 비중이 높은 집의 재계약이라면 전세보증금 미반환의 위험성을 줄이기 위해 집주인에게 올려준 임차보증금 증액 분으로 선순위근저당권 채무 중 일부를 상환하거나 변제토록 하는 방법이 있다. 이때 전세계약서에 특약을 별도로 명기하는 것이 좋다. 집주인이 근저당권말소의무나 은행변제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임차인은 계약을 해지하고 보증금 반환 및 임차인이 입은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는 특약을 하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원룸이나 다가구주택과 같이 구분등기가 안 되는 주택의 경우 집주인이 모든 가구를 공동담보로 대출을 받는 데다 선순위 근저당권자의 채권최고액을 등기부등본을 통해 파악하더라도 집주인이 다른 세입자 몇 명으로부터 얼마의 임차보증금을 받았는지 알 방법이 없다. 만약 근저당권자가 대출금을 회수할 경우 통상 모든 가구에 대해 동시에 경매를 신청하게 된다. 보증금을 떼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집 전체에 대한 임차보증금을 철저히 확인해야 하는 이유다.

전세계약을 마친 뒤에는 인근 주민센터에 전입신고를 하고 임대차 계약서에 확정일자를 받아야 한다. 확정일자와 전입신고 중 늦은 날짜가 임차인이 임대차보호법상 보호를 받을 수 있는 기준일이 된다. 재계약 시 전세보증금을 올려줬다면 확정일자를 다시 받아야 한다.

소액임대차보증금 보호 대상인지도 따져보는 게 좋다. 근저당 설정일이 2010년 7월26일 이후인 경우 서울에선 전세보증금 7500만원 이내,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선 6500만원 이내가 해당된다. 임대차보증금 보호 대상 주택이 경매에 넘어갈 경우 서울에선 2500만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선 2200만원까지 보호받을 수 있다. 나머지 보증금은 확정일자를 갖춘 경우 근저당과 시간 순으로 우선 변제 여부가 결정된다. 전세금보장신용보험에 가입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전세계약 후 5개월 내에 서울보증보험에 신청하면 심사를 거쳐 가입이 가능하다. 계약만료 후 30일이 넘도록 전세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보험회사가 전세보증금 전체나 일부를 지급한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