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퍼카업체 람보르기니. 원래는 트랙터를 만들던 농기계 회사였다. 창업자 페루치오 람보르기니(1916~1993)가 이탈리아 슈퍼카업체 페라리에게 ‘트랙터나 잘 만들어라’는 비아냥을 들은 뒤 절치부심, 1963년 첫 슈퍼카 ‘350GTV’를 탄생시켰다. 튼튼한 농기계를 만들던 ‘기본기’가 글로벌 시장을 정복한 비결이었다.

정부 주도의 유통구조와 내수에 안주하며 쇠락의 길을 걸어왔던 50여년 역사의 국내 농기계 산업도 글로벌 시장에 눈길을 돌리고 있다. 최근 잦아진 애그플레이션(agflation·농산물 가격에서 촉발된 인플레이션)도 한국 농기계산업에는 새로운 성장의 모멘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기계화·자동화설비의 전 세계적인 수요 확대를 활용해 수출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기 때문이다.

◆‘나홀로 산업’의 과거

국내 농기계 산업의 태동은 1968년 대동공업이 경운기 엔진을 국산화한 시점으로 볼 수 있다. 새마을운동에 소 대신 농기계가 다니도록 마을 길을 넓히는 프로그램이 들어갔던 것도 이 즈음이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급속한 도시화·공업화로 비약적 성장을 이루기는 어려웠다. 국내 농기계시장은 2007년 1조2000억원을 정점으로 지금은 1조원 안팎에 머물고 있다. 김경수 농기계공업협동조합 해외지원팀장은 “논은 92% 기계화가 완료됐고 추가 수요처인 밭은 작목이 다양해 기계화가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좁아터진 내수시장에 800여개 영세업체가 난립하는 구조가 됐다. 기업당 평균 생산대수는 일본의 20%에도 미치지 못한다.

강창용 농촌경제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재와 부품기술은 선진국의 90%까지 따라잡았지만 연비와 내구성 등은 매우 취약하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정부가 농가를 상대로 농기계 구매 보조금·융자 등의 지원정책을 펼친 것도 결과적으로 업계의 경쟁력을 떨어뜨린 요인으로 지목된다.

◆동남아·남미 잡아라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수출실적은 전년 동기 대비 20.6% 늘어난 4억1200만달러였다. 2005년 이후 줄곧 3~4억달러 수준에 그쳤지만 최근 2~3년 새 급증한 것이다. LS엠트론과 대동공업, 동양물산기업 등이 선두다. 대동공업 관계자는 “대형기계 중심인 미국에서 틈새시장인 잔디깎이, 소형농 대상 트랙터에 집중한 것이 비결”이라고 설명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전 세계 농기계시장이 연평균 5.3% 성장, 2020년 2229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김병갑 농진청 연구사는 “자유무역협정(FTA)으로 농산물 교역이 늘어나면 품질검사용 기계류 등 수출 기회가 증가할 것”이라며 “우리처럼 소농 체제인 동남아와 남미 등을 공략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최근 이상기후로 농산물 수급 문제가 부각된 것도 새로운 기회다. 생산성 향상을 위해 신흥국마다 농촌 기계화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선 사양을 낮춘 경운기, 동남아·아프리카 등에선 탈곡기 등이 유망 제품으로 꼽힌다. 현재 미국 수출이 38.6%로 가장 많지만 중국(8.5%) 태국(3.5%) 인도(2.2%) 등 신흥시장 수출이 점차 느는 추세다.

농식품부는 수출 지원을 반영한 농업기계화촉진법 개정안을 오는 10월까지 내놓기로 했다. 올초 내건 ‘2015년 농기계 수출 10억달러’를 집중 추진하기 위해서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30년간 유지한 ‘농촌 기계화’ 기조를 버리고 이제 수출 전략산업으로 보겠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유미 기자 warmfron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