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폭력피해자전담조사팀, 조폭전담수사팀, 학교폭력수사전담팀, 주폭수사전담팀, 외국인5대범죄수사전담팀 등등….’ 사회에 큰 파문을 던지며 많은 국민의 공분을 자아냈던 대형 강력사건이 터질 때마다 여론의 뭇매 속에 경찰이 ‘전가의 보도’처럼 꺼내든 ‘전담반’들이다. 전담반의 그럴듯한 명칭은 이전이나 지금이나 별반 변한 게 없다. 전담반이 구성되고 해당 사건이 국민의 뇌리에서 멀어질 쯤 전담반도 슬그머니 유야무야됐다가 또다시 강력사건이 터지면 부랴부랴 전담반을 부활시키는 패턴이 이어진다.

올 들어 구성돼 운영 중인 경찰 전담반만 해도 30여개에 이른다. 최근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과 통영초등학생 실종사건을 계기로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아동에 대한 성폭력을 근절한다는 명분으로 꾸려진 전담반도 ‘재탕’이다. 불과 2년 전인 2010년 6월 8세 어린이를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 사건’이 터졌을 때도 경찰은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특별수사대를 급히 만들었지만 7개월 만에 해체됐다.

강력사건이 터질 때마다 전문수사요원으로 전담반을 꾸리다보니 업무난에 허덕이는 형사들이 수시로 차출돼 일선 경찰서의 치안 공백으로 이어지고 있다. 요란한 전담반 출범과는 달리 5대 강력사건(폭력, 절도, 살인, 강간, 강도) 발생 건수는 오히려 매년 늘어나는 추세다. 경찰청에 따르면 2006년 48만9305건이었던 5대 강력사건은 2008년 54만4527건, 작년엔 61만7910건 발생했다. 일선 경찰서 내부에서조차 전담반 무용론이 제기되고 있는 배경이다.

전담반 수명 1년 안 돼…‘인력 운영 잘못’ 지적

경찰이 매번 사건 근절을 외치며 출범시킨 전담반의 수명은 채 1년이 되지 않는다. 해당 사건 발생이 줄어서가 아니다. “효율적인 전담반 운영이 힘든 상황에서 전담반 운영은 오히려 지역 치안 공백을 불러오는 인력 낭비”라는 내부의 지적도 나온다.

올해 초 학교폭력으로 대구에서 자살 학생이 속출하자 경찰은 다양한 대응팀을 발족시켰다. 대구지방경찰청 학교폭력수사전담팀, 전북지방경찰청 학교폭력 전담경찰관, 서울 동대문경찰서 학교폭력팀과 같은 식이었다. 하지만 6개월이 지난 지금 동대문경찰서 학교폭력팀을 비롯해 대부분 전담팀들은 ‘개점 휴업’ 상태다. 일반적으로 강력팀은 관내에서 일어나는 살인 절도 강도 등 5대 범죄를 지역으로 구분해서 맡는다. 예컨대 강력 1팀은 A지역, 2팀은 B지역을 맡는 방식인데 동대문경찰서는 지난 2월 강력3팀에 학교폭력 업무를 전담하도록 했다. 그러나 동대문경찰서 학교폭력팀이 처리하는 학교폭력 관련 사건은 한 달에 1~2건에 불과하다. 학교폭력 신고는 전화번호 117로 일괄 접수하고 이는 여성청소년계에서 대부분 맡는다. 학교폭력팀 관계자는 “이름은 학교폭력팀이지만 사실상 (이전처럼) 강력팀 업무를 맡고 있다”며 “그러나 전담반 구성 자체가 일진들의 폭력 의지를 위축시키는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A경찰서 수사과장은 “학교폭력은 예방이 중요한데 수사팀 5명이 동대문구 내 초·중·고교 전체를 관리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다른 경찰서와 조직 시스템이 달라 지속할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사회적 약자인 여성과 아동 성범죄는 국민의 공분을 불러일으켜 경찰이 가장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사건이다. 전담반 구성이 특히 빨리 이뤄지는 이유다. 하지만 이 역시 재탕·삼탕이고 1년을 넘기지 못한다. 2010년 6월 8세 어린이를 납치해 성폭행한 ‘김수철 사건’이 터졌을 때도 경찰은 ‘아동 성범죄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문수사요원들로 성폭력 특별수사대를 구성, 아동과 여성을 대상으로 한 성폭력 사건을 전담토록 했지만 지난해 2월 해체됐다.

지난달 27일 당시 제주 올레길 살인사건과 통영초등학생 실종사건을 계기로 김기용 경찰청장은 전국 16개 지방경찰청장을 불러 “아동과 여성 대상 성폭력 범죄에 강력 대응하라”는 특명을 내렸다. 하지만 일선 형사들은 ‘차출’을 꺼리며 내심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이번 전담반도 ‘단명’에 그칠 것을 암시해주는 대목이다.

전담반 차출 형사, 일 없어 시위현장 주변으로

일선 경찰서 강력팀 형사들은 ‘전담반 노이로제’를 호소할 지경이다. 구성 초기에는 의욕을 갖고 기획수사에 나서지만 강력사건의 특성상 발생 빈도가 낮아 수십명의 베테랑 형사들이 수개월 동안 헤매고 다녀도 허탕치는 경우가 허다하다. 도봉경찰서의 한 형사는 “이전에 연예인 기획사 비리수사팀에 파견됐는데 두 달 넘게 단속을 했지만 허탕을 쳤다”며 “전담팀이 꾸려지면 일만 벌리다 소리소문 없이 사라져 실적은 고사하고 소속서에서조차 ‘놀다온 놈’ 취급을 받는다”고 말했다.

성매매와 불법 오락실 단속전담팀에 들어갔다가 일거리가 없어 팀이 해산될 때까지 시위현장을 전전하는 웃지 못할 사례도 심심찮게 생기고 있다. 금천경찰서 한 형사는 “성매매업소와 불법 오락실 단속팀이 600명으로 구성돼 처음에는 관내 300개 업소를 훑고 다닐 정도로 열의를 보였는데 성과는 없고 놀 수도 없어 시위현장에 투입됐다”며 “그 시간에 관내 강력사건 해결에 매달렸으면 실적이라도 쌓을 수 있었을 텐데…”라고 말했다.

서울 B경찰서 수사과장은 “대형 사건이 터지면 형사들이 전담팀 차출을 피하려고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눈을 피한다”며 “1년에 범죄가 1000건이면 950건이 절도 사건인데 대형 사건이 터진다고 전담인력을 더 배치한다는 건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기 위한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여론 무마용 ‘전담반 만능주의’ … 예방이 최선

전문가들은 경찰의 ‘전담팀 만능주의’는 여론에 끌려다니는 경찰의 현 주소를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지적했다. 민생 치안을 담당하는 경찰의 특성상 여론의 뭇매를 맞는 경우가 많고, 이에 대한 대책을 내놔야 국민이 안심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전담팀은 국민들에게 경찰이 치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말했다. 한 전직 경찰관은 “특정 범죄 유형에 대한 자료나 정보들을 충분히 쌓고 관리하며 전담반 구성의 필요성이 있는지 면밀히 검토한 뒤에 결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서울 C경찰서 형사과장은 “경찰의 인원은 한정적인데 전담반을 꾸린다며 인력을 동원하면 다른 민생 치안 사건에 구멍이 생긴다”며 “전담팀은 피의자를 붙잡고 사법처리하는 데 중점을 두기 때문에 예방책 위주로 방향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사건이 하나 터지면 여러 대책을 내놓는데 이런 방법들에 대한 효과적인 측정 방법이 없기 때문에 범죄 예방 프로그램의 타당성을 파악한 뒤 체계적으로 도입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처벌 위주의 전담반 구성보다는 지구대 경찰의 순찰 활동 강화를 통해 강력사건을 예방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지역 경찰들이 우범자 정보를 직접 관리해 지속적으로 성범죄나 기타 강력범죄 전과자를 단속하면 심리적인 압박을 줘 범죄를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이웅혁 경찰대 행정학과 교수는 “애초부터 통영 사건이나 제주 올레길 사건은 경찰만의 문제는 아니었다”며 “전자발찌를 관리하는 법무부, 성범죄자의 신상 공개 사이트를 관리하는 여성가족부 등과 긴밀히 협조해 범죄를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한정된 인원으로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에서 전담팀 구성은 ‘현실적인 대안’이란 반론도 있다. 조병인 형사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인원의 효율성 측면에서 보면 그때그때 상황에 맞는 인력 구성이 필요하다”며 “그런 가운데 고육지책으로 나온 게 전담반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시선으로만 보면 안 된다”고 말했다.

김우섭/박상익/이지훈 기자 dut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