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동훈 감독의 ‘도둑들’ 흥행이 파죽지세다. 지난달 25일 개봉해 3일까지 단 10일 만에 530만명을 기록했다. 이 같은 흥행 속도는 1000만명 이상을 동원한 영화 중 ‘괴물’보다는 뒤지지만 ‘아바타’와 ‘해운대’보다는 빠르다. 평일에도 하루 50만명씩 동원해 ‘해운대’ 이후 3년 만에 1000만명 관객을 돌파할 전망이다.

이 영화 배급사는 오리온계열 쇼박스. ‘도둑들’에 이어 올해 두 번째 흥행작 ‘범죄와의 전쟁’(468만명)도 연초 배급했다. 한국영화를 2편 배급해 모두 홈런을 날린 셈.

쇼박스 관계자는 “올해는 우리뿐 아니라 4대 국내 배급사가 모두 400만명 이상 관객을 모은 영화를 한두 개씩 냈다”며 “2000년대 들어 최고 호황”이라고 말했다.

‘도둑들’을 포함하면 올 들어 400만명 이상 영화가 6편이나 탄생했다. 400만명을 동원한 영화가 평균 제작비(50억원)를 투입했다고 가정하면 순익은 100억원에 달한다.

400만명 이상 3편 정도를 1~2개 배급사가 독식하던 예전의 쏠림현상에서 벗어났다는 얘기다. 게다가 상반기 관객 수는 전산망 집계 이후 최고인 8279만명에 달해 지난해 같은 기간 6842만명에 비해 1437만명이나 증가했다.

성장세가 가장 두드러진 배급사는 비(非)대기업 계열사인 NEW. ‘내 아내의 모든 것’(458만명), ‘부러진 화살’(341만명), ‘러브픽션’(171만명) 등이 흥행에 성공하며 상반기 관객 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00% 이상 늘었다. 이 기간 중 573만명에서 1220만명으로 증가한 것. 이달에는 사극 코미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로 흥행에 다시 도전한다.

CJ E&M은 올해 ‘댄싱퀸’(400만명), ‘화차’(242만명), ‘연가시’(450만명) 등을 배급해 성공했다. 이로써 지난해 말 전쟁대작 ‘마이웨이’ 실패에 따른 잦은 인사로 가라앉은 분위기도 살아나고 있다. 정태성 새 대표 체제 아래 ‘R2B: 리턴 투 베이스’를 개봉할 계획이다.

롯데엔터테인먼트는 한국 멜로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건축학개론’(410만명)과 ‘후궁’(263만명)을 배급했다. 주요 배급사들의 이 같은 실적은 다른 3~4편을 실패해도 너끈히 견뎌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제작 명가들도 생겨났다. ‘건축학개론’의 명필름, ‘내 아내의 모든 것’의 집, ‘댄싱퀸'의 JK필름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이 손 대면 흥행 가능성이 높다는 명성을 쌓아가고 있다. 원로영화인들도 귀환했다. ‘후궁’을 제작한 황기성 씨와 ‘부러진 화살’을 연출한 정지영 감독은 60~70대 노장들이다. 현역 원로들이 거의 없는 영화계에 새 희망을 던져줬다.

영화시장이 호황을 누린 비결은 새로운 관객층을 겨냥한 다양한 소재의 영화들이 성공했기 때문이다. 20대 주 관객층의 취향을 벗어난 복고풍 범죄영화 ‘범죄와의 전쟁’, 로맨틱 코미디의 연령층을 확장한 ‘내 아내의 모든 것’과 ‘러브픽션’, ‘건축학 개론’ 등이 그것. 가령 ‘건축학개론’은 30대 중반 주인공이 15년 전 스무 살 시절의 러브스토리를 회상하는 내용으로 30대 남녀를 주 관객으로 끌어당겼다. ‘연가시’는 10대 어린이와 청소년들의 입소문을 타면서 가족영화가 됐다.

또한 30~40대 주부의 자아찾기 여정을 그린 ‘댄싱퀸’, 사법부의 권력 남용을 통렬하게 비판해 40~50대 남성을 모은 ‘부러진 화살’ 등도 빼놓을 수 없다.

NEW 관계자는 “기획 대상이 20대 일색에서 30~40대로 확장됐다는 것은 긍정적인 신호”라며 “정체기에 들어선 것으로 여겨진 영화시장이 또 한 번 도약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